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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받아도 암·치매 걸리면 노후파산…의료비에 노인허리 더 휜다

이승훈 기자
입력 : 
2021-06-08 17:36:06
수정 : 
2021-06-08 19: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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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의료비 급증 비상

노인 10명 중 9명 만성질환
하루에 먹는 약만 평균 4개

기대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수명은 오히려 줄어들어
`유병장수` 고통 갈수록 심각
◆ 노후빈곤 시대 ① ◆

사진설명
# 경기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허수호 씨(가명·73)는 국민연금과 퇴직급여, 소형 오피스텔 월세 등으로 한 달에 220만원가량 고정수입이 있다. 중소기업에 다니며 운좋게 61세에 은퇴한 그는 그동안 부부가 함께 생활하는 데 큰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초 아내가 후두암 판정을 받으면서 시련이 다가왔다. 수술비와 치료비, 요양비 명목으로 목돈이 뭉텅뭉텅 나가면서 허씨가 모아놓은 퇴직금의 절반가량이 없어졌다. 여기에 아내를 간호하다 고질병인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면서 본인마저 수술대에 오를 판이다. 자식들에게 손을 벌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닌 허씨는 막대한 의료비로 갑작스럽게 막막해진 노후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끙끙 앓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10명 중 9명은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3개 이상 복합질환자 수도 절반을 넘어선다. 노인이 하루 먹어야 하는 약 개수만 평균 4개에 달한다. 이렇듯 고령층에 대한 질병이 만연하면서 의료비 부담이 장수를 축복이 아니라 고통으로 바꿔놓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급여항목과 개인이 따로 돈을 내야 하는 비급여항목으로 나뉜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문재인케어'를 통해 비급여항목의 상당 부분이 급여항목으로 전환됐지만, 2019년 말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 보장률은 64.2%에 그친다. 이는 진료비 중 35%가량을 여전히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다.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가 1인당 생애 총의료비를 분석한 결과 국민 한 사람이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지출하는 총의료비 중 55%를 65세 이후에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81.9세까지 지출하는 의료비는 약 1억4560만원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후 지출하는 의료비가 약 7960만원으로 전체 중 절반을 넘는다. 노인 의료비 증가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재정에도 부담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를 보면 2014년 19조9000억원이던 노인 진료비가 2025년에는 57조9000억원, 2050년에는 251조2000억원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따라 장기요양보험 지출도 2017년 5조4000억원에서 2025년에는 3배에 가까운 14조2000억원까지 뛸 것으로 우려된다.

류재광 삼성생명 인생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의료기술 발달로 80세 이상 고령층 수술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은퇴 이후 지출하게 되는 의료비 비중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448만7000원, 1인당 본인 부담 의료비는 104만6000원이다. 이는 전년보다 각각 32만5000원, 3만1000원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인구와 비교한 고령자 1인당 진료비는 2.9배, 본인 부담 의료비는 2.8배가 높다.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지출이 많다는 얘기다.

여기에 기대여명과 건강수명 차이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기대여명은 특정 연령의 사람이 앞으로 살 것으로 기대되는 나이를 의미한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유병기간을 뺀 수명을 말한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2년만 해도 기대여명은 81.4세, 건강수명은 73세로 격차는 8.4세였다. 반면 2018년에는 각각 82.7세와 64.4세로 차이가 18.3년으로 늘었다. 류 수석연구원은 "건강수명이 빠르게 줄고 있는 것은 노년기에 만성질환을 앓는 등 사망 전까지 병원 신세를 지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최근 고령층 건강에서 가장 문제되는 것이 치매다. 65세 이상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이고 최근 10년간 치매환자가 4배로 늘어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치매는 심각한 문제다.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4년째 돌보고 있는 김성환 씨(81)는 "치매 초기에는 요양병원 입원도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며 "잠시만 한눈을 팔면 집을 나가기 일쑤고 자식이나 친척, 이웃들에게 너무 못되게 굴어 하루하루 삶이 지옥 같다"고 호소했다.

2019년 치매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79만9000명에 달한다. 진료비는 2조430억원, 원외처방 약제비도 3199억원에 달한다. 환자의 성별을 보면 여성이 56만5040명으로 남성보다 2.4배 많았다. 특히 85세 이상 치매환자는 2009년 100명당 12.4명에서 지난해 33.2명으로, 65세 이상 환자는 같은 기간 100명당 3.5명에서 9.7명으로 증가했다.

치매 노인 증가로 치매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8년 15조7000억원이던 치매 관리비용이 2060년에는 105조7000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고령층이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80세 이상 고령자의 경우 10명 중 2명이 자신의 힘으로 거동을 하지 못하거나 온종일 누워 있는 등 일상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60대의 경우 3.7%에 불과하던 숫자가 80대에는 19.6%까지 늘어나는 것이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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