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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명품매장 북적북적 vs 동네슈퍼는 눈물…보복소비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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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판매지수 25년만에 최고

백신접종 속도 내며 소비 `쑥`
빅3 백화점은 4월매출 폭증
숙박·음식점도 모처럼 반등

억대 수입차 넉달새 2만대 팔려
슈퍼카 지금 사도 내년에 받아

동네슈퍼·전통시장은 울상
자영업 많은 잡화점은 침체
◆ 실물경제 긴급진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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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강남구의 한 수입차 판매전시장 앞이 출고를 대기하는 차량들로 가득하다. [김호영 기자]
31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는 백화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개장과 동시에 샤넬 등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제품을 구입하려는 '오픈런'을 위한 것으로, 최근에는 주말과 평일 상관없이 매일 인파가 몰리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4월 롯데백화점 매출은 작년 같은 달보다 32.9% 늘었다. 이 기간 해외 명품 매출이 61.8% 급증한 영향이 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연초에 비해 둔화되고 정부의 거리 두기 조치 완화로 억눌렸던 민간 소비 회복 흐름이 두 달 연속 이어졌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방역조치 완화에 따라 움츠렸던 외부활동이 늘면서 백화점· 마트 등에서 의복과 신발·가방·화장품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 것이다. 2억~4억원이 넘는 고급 수입차 판매도 급격히 늘면서 일부 슈퍼카 브랜드는 재고가 없어서 차량을 못 파는 지경이다.

그러나 슈퍼마켓·잡화점 등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자영업은 여전히 회복속도가 더딘 것으로 나타난다. 민간소비도 고가 제품이 잘 팔리고 일반적인 제품은 최저가 등 싼 가격만 찾는 K자형 양극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매판매액지수는 120.5(2015년=100)로 199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같은 달 기준으로 가장 높았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2.3%, 작년 같은 달 대비해서도 8.6% 증가하며 두 달 연속 증가 흐름을 이어갔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정부의 영업 제한 및 집합 금지 조치 완화 효과가 이어지면서 숙박·음식점 생산이 모두 증가했고, 의복·화장품·음식료품 등 판매가 늘면서 섬유·의복·신발 소매업 등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전반적인 소비회복 증가세는 보복소비성으로 백화점에서 매출 증가세가 특히 돋보였다. 신세계백화점은 4월 한 달간 명품 매출이 작년 같은 달보다 63.2%나 급증했다. 백화점 매출 대부분을 책임지는 여성패션(28.4%)과 생활용품(16.2%) 매출도 두 자릿수 상승세를 보였다. 국내 백화점 전체 매출도 1년 전보다 38.2%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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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백화점의 경우 지난 4월 매출이 작년 같은 달보다 37.6% 증가했다. 이 기간 명품 판매가 65.7%나 뛰며 전체 매출 상승을 이끈 가운데 20·30대 골프 인구가 많아진 영향으로 골프 관련 의류와 용품 매출도 69.5% 증가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보복소비는 욕구나 욕망이 억눌려서 분출되는데, 이런 현상이 명품 구매로도 이어진다"며 "그간 외출 자제 등으로 억눌렸던 심리로 인해 자기 자신의 취향이나 남들에게 보이는 소비물품 쪽으로 활발히 구매심리가 살아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류·가방 등 준내구재뿐만이 아니다. 보복소비는 부유층에선 고급 자동차 구매로 이어졌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판매가격 1억원 이상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는 2만203대로 전년 동기 대비 74.1%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수입차 신규 등록대수 9만7486대의 20.7%에 달하는 규모로, 올해 국내에 팔린 수입차 5대 중 1대가 '억대' 고급차인 셈이다.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 우라칸의 경우 모델별로 최대 8개월 치 주문접수가 완료돼 지금 예약을 해도 내년에나 차량을 인도받을 수 있다. 에보, 에보 스파이더, RWD, RWD 스파이더, STO 등으로 구성된 우라칸은 최저 판매가격이 2억원대 후반이며, 최고가는 4억3500만원에 달한다.

특히 최근 고급차 소비는 3040세대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회에 따르면 올해 1~4월 1억원 이상 고급 수입차 구매고객의 연령대는 40대 12.8%(2592대), 30대 9.5%(1918대), 50대 7.8%(1582대), 60대 이상 5.6%(1124대), 20대 이하 0.9%(169대)로 집계됐다.

소비심리가 살아난 건 반가운 일이지만 문제는 업종·업태별로 회복속도가 다른 '부익부 빈익빈' 양상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소매업태별로 봐도 백화점(25.5%), 대형마트(5.6%) 등이 전년 같은 달 대비 모두 증가세를 보였다. 그러나 자영업 위주의 슈퍼마켓 및 잡화점(-2.6%) 등은 감소세였다. 동네슈퍼·문구완구점·서점 등은 여전히 침체돼 있다는 말이다. 해외여행 감소 타격이 큰 면세점(-5.4%)도 전년 대비로는 마이너스다. 살아나는 소비심리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기업 운영 점포와 고가 명품 등 중심으로 이뤄지면 소비 증가가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제품별로도 반복적 소비를 좌우하는 화장품, 음식료품, 차량연료 등 비내구재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가폭은 4.2%에 그친 반면 의복, 신발·가방 등 준내구재는 22%에 달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백화점·마트에서 명품과 의류 등 회복세만 두드러지면 소상공인의 경기 체감과는 괴리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용 기자 / 김태성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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