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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학대아동 10명중 1명, 5년 내에 또 당해

차창희 기자
입력 : 
2021-05-06 17:03:47
수정 : 
2021-05-06 17: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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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악순환 반복

하루 평균 82명 피해 경험
"논란 때마다 땜질식 대응
원인근절 위한 로드맵 필요"

무력한 정책에 학부모 나서
사건 공유·시민단체 협력
`정인이 사건` 후 신고 37% 쑥
◆ 그늘진 가정의 달 ② ◆

사진설명
만 5세 남아를 키우는 이 모씨(37)는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상처가 남아 있다. 지난해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아들의 복부 부위를 주먹으로 수차례 가격한 기억이 잊히지 않아서다. 그런 이씨에게 '정인이 사건'은 가슴을 후벼 파는 일이었다. 이씨는 "정인이 사건 뉴스를 보면서 남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정말 많이 아팠다"며 "아동학대 사건은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있어 왔지만 늘 누군가가 소중한 목숨을 잃어야 그때서야 개선이 이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후 16개월 된 정인 양이 사망한 이후 아동학대 근절에 대한 온갖 처방이 거론됐다. 그러나 학대 사실을 발견하고 처리하는 사후대책이 아닌 예방에 치중한 대책이 더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한 해에만 총 3만45건의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2015년 1만1715건에서 무려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하루 평균 82명의 아동이 학대 피해를 당했다. 한 해에 소중한 목숨을 잃은 아동도 42명에 달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학대 발생 5년 이내에 재차 학대를 당한 아이가 2776명에 달한다는 점이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학대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것이다.

정인이 사건 이후 맘카페 등에서는 "아동학대를 당했다"는 글이 줄을 잇고 있다. 전북에선 생후 2주 된 아이를 폭행해 숨지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고 경북 구미의 한 빌라에선 만 3세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최근 인천에서는 생후 2개월 여아를 탁자에 내동댕이쳐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정부는 아동학대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하며 사건 조사를 담당하는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전국에 추가 배정하기로 했다. 1년에 두 차례 이상 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분리해 보호하는 즉각분리제도 시행됐다.

학대 방지 대책이 대부분 사후에 집중돼 있고 원인 근절을 위한 폭넓은 고민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례로 빈곤층이거나 불화가 잦은 가정의 아동들은 학대를 비롯해 성범죄에도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인천 2개월 여아 사망 사건의 경우 가해자인 부모가 긴급생계지원을 받고 모텔에서 출산할 수밖에 없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김영심 숭실사이버대 아동학과 교수는 "현재 정부의 대응체계 강화 방안을 보면 사후약방문인 경우가 대부분으로 발생하기 전에 어떻게 사전에 인식해서 조치를 취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일차적으로 가정에서 학대를 방지할 수 있도록 부모에 대한 교육과 어린 나이에 출산을 경험하는 세대를 위해 청소년 때부터 '부모 됨'을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책이 따라오지 못하는 현실에 학부모들은 자율적으로 학대 방지를 위한 정보 공유에 나서고 있다. 학대 의심 사건이 발생하면 맘카페를 중심으로 즉각 정보를 공유하고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등 관련 시민단체 등에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정인 양이 사망한 지난해 10월 이후 올해 1월까지 아동학대 관련 신고는 총 5958건이 접수됐다. 전년 같은 기간(4332건)과 비교하면 약 37.5%나 증가한 것이다. 그나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경찰청의 제도 개선은 성과로 평가된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아동학대가 의심될 경우 경찰이 압수한 CCTV 원본을 피해 아동 보호자가 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지난달 26일부터 적용했다. 경찰에 따르면 앞으로 피해 아동 보호자는 수사 목적 내에서 비식별화 조치나 관련자 동의 없이도 경찰이 압수한 CCTV 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된다.

[차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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