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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2인자의 대권 등극, 미국선 되는데 한국선 왜 없었나

이상훈 기자
입력 : 
2021-04-25 16:55:38
수정 : 
2021-04-25 20: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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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ECIAL REPORT : 대권 '총리 징크스' 이번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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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왼쪽), 정세균(오른쪽)
올해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취임과 함께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57)은 명실상부한 차기 대선후보 '0순위'가 됐다. 그는 부통령 후보로 선택받았을 때부터 차기 후보 물망에 올랐고 이젠 미국 민주당의 '미래'로 꼽힌다. 한국의 경우 국무총리를 거친 두 명의 대선주자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포진하고 있다. 문재인정부 첫 번째 국무총리인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9), 두 번째 총리를 지낸 정세균 전 국회의장(71)이다. 미국에선 부통령이 권력 2인자라면, 한국에는 총리가 2인자로 통한다.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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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2인자인 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가 꽤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만 보면 세 명이 있다. 가장 최근 사례는 바이든 대통령.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8년간 부통령이었다. 그에 앞서서는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됐고, 리처드 닉슨도 부통령 출신 대통령이다. 특히 아버지 부시는 부통령 임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대선에 나서 승리해 대통령이 됐다. 대권 직행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미국 헌정사 전체를 보면 해리스 취임 전에 48대까지 배출된 부통령 가운데 10명(대통령직 승계는 제외)이 대선에서 당선돼 대통령에 올랐다. 이 10명 가운데 4명은 현직 대통령의 궐위로 일단 승계를 한 뒤 그다음 대선에서 당선됐다.

한국에서는 2인자인 총리가 지금까지 모두 46대에 걸쳐 42명이 있었는데, 퇴임 후 대선을 거쳐 대통령에 오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다. 최규하 전 총리는 1979년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그해 12월 대통령에 올랐지만 간선제 대통령이고 신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때라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 대선에서 이겨 실권을 가진 대통령이 된 총리는 한 명도 없다. 대선과 관련해 '총리 징크스'라고 할 만하다.

◆ 대선 당선은커녕 본선 뛴 경우도 드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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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총리들이 대선을 꿈꿨지만 당선은커녕 대선 본선에서 뛴 경우조차 드물다. 김종필 전 총리와 이회창 전 총리만이 본선에 나갔다. 제3공화국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김대중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김종필 전 총리는 1987년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또 1997년 대선을 놓고 다른 후보들과 경쟁을 벌였지만 막판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으로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대선에 불출마했다. 김영삼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대선에 세 번 출마했다. 19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에서 석패했고 2007년 대선에도 나섰지만 3위에 그치며 대권 도전을 마쳤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노무현정부의 두 번째 총리였는데, 실질적 권한을 가진 '책임총리'로 통한다. 2007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당내 경선에서 3위에 머물며 본선에 나가지 못했다.

고건 전 총리는 '대세론'까지 만들었다. 김영삼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에서도 총리에 오른 그는 장관과 서울시장 등을 거친 관록의 총리로서 '안정감'이 장점이고 '행정의 달인'이란 이미지를 가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위기 당시에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내 짧은 기간이지만 국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는 평가 속에 30%가 넘는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2007년 초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다.

이명박정부에서는 정운찬 전 총리가 대선주자급으로 주목을 받았다. 당시 유력 차기 주자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항마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가 '총대'를 멘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대선 출마 역시 사그라들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이완구 전 총리와 황교안 전 총리가 대선과 연관 지어 주목을 받았다. 이완구 전 총리는 '충청 대망론'을 불러오며 정치권의 중심에 서는 듯했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 취임 두 달여 만에 물러났다. 황교안 전 총리는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고,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당 대표를 받으면서 보수 진영의 차기 주자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본인이 낙선하고 당도 참패하면서 대표에서 물러났다.

◆ 대통령이 '하이어'하고 '파이어'한다

한국과 미국은 모두 대통령 중심제 국가다. 그런데 미국의 '넘버2'는 대선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나오는데 한국의 '넘버2'는 왜 대선 도전조차도 쉽지 않은 걸까. 2인자 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면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걸까.

무엇보다 미국의 부통령과 한국의 총리는 선출 방식이 다르고 그에 따른 위상에도 차이가 있다. 미국의 부통령은 대개 의원 출신 정치인 중에서 나오는데 러닝메이트로서 대통령과 함께 선거를 통해 뽑힌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 기간 선거운동과 유세에 나선다. 선출직으로서 국민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임기가 보장된다. 그만큼 권력의 정당성이 강한 자리다.

김관옥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자연스럽게 대통령을 준비하는 사람이란 인식이 있고 실제 대권을 꿈꾸는 사람이다. 차기 대선주자로서 사전에 발령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부통령이다." 게다가 미국에선 부통령이 백악관에서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다. 물리적 공간의 측면에서 대통령이란 자리의 '실전'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총리는 대통령의 선택을 받는 자리다. 임명되는 거다. 많은 경우 학자 출신, 관료 출신이 총리가 된다. 국회의 동의 절차가 있지만 대통령 의중에 따라 임명되고 물러나기도 하는 자리다. 미국통인 박진 국민의힘 의원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총리는 대통령이 '하이어(hire·고용)'하고 '파이어(fire·해고)'할 수 있다. 그래서 총리가 가진 권력상 지분은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을 '보완하는 자리'와 '보좌하는 자리'라는 차이도 있다. 미국의 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정치적으로나 이미지상으로 대통령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 젊은 대통령에겐 경륜 많은 부통령, 남성 대통령에겐 여성 부통령, 내치에 강한 대통령이면 외교에 강한 부통령 식이다. 그래서 부통령은 자신의 색깔과 '전공'을 갖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에 따라서는 외교, 여성 등의 분야 정책을 부통령이 전담하는 경우도 있다. 또 대통령 궐위 시 부통령이 승계해 잔여 임기를 채운다. 하기에 따라선 다음 대선에 나가 당선되곤 한다.

한국의 총리에겐 종종 '방탄 총리'란 표현이 붙는다. 권한은 대통령이 행사하고 책임은 총리가 진다는 의미다. 즉, 공은 대통령에게 돌리고 과는 자신이 덮어쓰는 자리가 총리라는 거다. 정권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총리가 쇄신용 개각의 대상이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위해 총리를 교체하는 거다.

그러니 총리는 개인의 정치적 능력을 제대로 선보이기 어려운 위치에 있다. 또 대통령 유고 시 다음 대선일까지 권한대행으로 국정을 유지해야 한다. 출마를 생각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또 다른 차이는 미국의 경우 중임제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4년씩 두 번의 임기를 가질 수 있다. 첫 임기에선 부통령이 대통령에게 자세를 낮추고 강한 존중을 보여주지만, 두 번째 임기에선 물러날 대통령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곤 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할 때 '정치적 야심'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보좌와 책임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과 다른 뜻을 갖기 어렵다. 김관옥 교수는 "많은 총리들은 각 분야에서 이미 정점에 도달한 인물이었다"면서 "(총리 자리에) 만족한다는 생각이 있지 과연 권력 의지가 강할지는 의문"이라고 분석했다. 단순히 총리 다음엔 대통령밖에 할 자리가 없다는 생각으로는 어림없다는 말이다.

◆ 대통령 성패에 달린 총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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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선택을 받아 임명되는 자리인 총리를 거친 인물이 치열한 경쟁을 거쳐 쟁취하는 자리인 대통령에 오르는 건 앞으로도 어렵다는 얘기일까. '총리 징크스'가 깨질 수 있느냐는 거다. 최근 정세균 전 총리는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총리 출신의 대선 도전이 모두 실패해 징크스란 말까지 생긴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런 징크스는 신경 안 쓴다. 기록은 깨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징크스를 깨는 길에 대해 전문가·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봤다. 몇 가지 길이 제시됐다. 우선 '어드밴티지'를 가질 수 있는 경우다. 상황에 따라 총리가 '핸디캡(한계)' 또는 '어드밴티지(이점)'를 가질 수 있다는 거다. 정권이 실패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만약 '성공한' 대통령이 등장할 경우엔 '정권 승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잘돼야 총리의 미래가 잘 풀리는 거다.

현재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노선과 궤를 같이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권 성공을 위해 매진하고 계승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에는 임기 말이면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곤 했다. 성공으로 평가받은 대통령이 없는 게 현실이다. 총리 입장에선 '어드밴티지'가 작동한 경우가 없었다. 김 교수는 "유권자에게 자신을 왜 찍어야 하는지 어필(호소)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대통령과 정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면서 "정권의 성패에 묶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의 연장선으로 인식된다는 거다.

다만 문재인정부가 내년 대선까지 백신과 부동산 문제 등에서 성과를 만들어내 지지율을 반등시키거나 하락을 제한한다면, 그리고 총리 출신 대선주자들이 문재인정부 계승과 동시에 한 단계 다른 비전을 제시한다면 대권 도전에 승산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하락세이고, 이 전 총리 역시 하락세다. 정 전 총리의 경우 5% 이하에서 맴돌고 있다.

◆ '할 말 하는 총리' 우뚝 섰던 이회창

또 다른 길은 '차별화'다. 주목할 만한 사례가 이회창 전 총리다. 이 전 총리는 대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다. 대법관, 중앙선관위원장, 감사원장을 맡으면서 강직한 이미지를 가졌다. 김영삼정부의 총리가 돼서는 대통령과 다른 입장과 생각을 자주 보이면서 '할 말을 하는' 총리로 통했고 '대쪽 총리'란 별명도 얻었다. 대통령과는 갈등이 있었지만 이것이 정치적 자산이 됐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차기 대선주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이룬 거다.

이 전 총리의 대권 도전과 관련해 1997년 대선에서 보수표가 분열되지 않았다면, 2002년 대선에서 아들의 병역 논란(무혐의 처분됐다)이 없었더라면 당선됐을 수 있다는 얘기는 지금도 나온다. 두 번의 대선 모두 2%포인트 전후의 득표율 차이로 패했기 때문이다. 박진 의원은 "총리 출신이라서 어렵다고 단정할 건 아니다. 이회창 전 총리처럼 대통령과는 다른 확실한 색깔을 보여주면 대권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 캠프에 참여한 경험이 많은 A인사는 "자신만의 색깔과 입지를 보여줘야만 도달할 수 있는 자리가 대통령"이라며 "이건 차별화를 의미한다. 대선은 새로운 사람을 선택하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 이낙연·정세균의 선택은 무엇일까

또 이낙연·정세균 전 총리는 총리가 되기 이전에 이미 정치인이다. 이낙연 전 총리는 도지사를 지냈고 5선 국회의원이다. 정세균 전 총리는 기업인 출신으로 6선 의원, 장관·국회의장을 거쳤다. 또 문재인정부 들어 이미 수년간 대선주자로 꼽혀왔다는 점에서, 과거 돌연 대선주자로 부각된 총리들과는 다르다. 정치인으로서 쌓아온 저력이 있다는 점은 미국 부통령들과 겹치는 부분이다.

미국 부통령 중에는 정권이 교체돼 대권 직행엔 실패했지만 한두 임기가 지난 뒤 다시 도전해 당선되곤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런 경우다. 다만 이 전 총리와 정 전 총리는 차차기 대선 때엔 70대 중반의 고령이 된다는 점에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총리 징크스와 대선에 도달하는 몇 가지 길. 총리 출신 두 명의 여당 대선주자의 선택이 무엇이고 이 징크스가 깨질지는 앞으로 펼쳐질 대선 경쟁을 보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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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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