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빈부격차’…더 위험해진 세계

장은교 기자

백신 이기주의가 빚은 양극화

변이 바이러스 확산되며

6주 만에 사망자 수 증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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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 김덕기 기자

전 세계 인구 16%인 부국이 접종 인구의 56% 차지
29개 저소득국가는 0.1%…30개국은 접종자 ‘0’
접종 못한 의료진 사망에 의료체계 붕괴 위기

고소득국가선 백신기술 공유 외면
WHO “도덕적 잔학 행위”

코로나19 백신 앞에서 세계가 ‘도덕적 파탄’ 상황에 이르렀다. 백신의 75%를 싹쓸이한 부자 나라들이 빠른 접종 속도에 자축하는 동안, 케냐·모잠비크 등은 백신을 맞지 못한 의료진의 사망이 늘어나 의료체계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백신 기술 공유 사이트에 등록한 제약사는 단 한 곳도 없다. WHO는 “도덕적 잔학 행위”라며 “백신을 맞지 못한 나라들의 피해는 결국 전 세계가 떠안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AFP통신과 옥스퍼드대학의 자료전문 사이트 ‘아워인데이터’가 22일(현지시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코로나19 백신은 이제까지 전 세계에서 4억8800만회 이상 접종됐다. 지난해 12월8일 영국에서 접종을 시작한 지 약 100일 만에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확대됐다.

하지만 숫자와 현실은 간극이 크다. 백신 접종의 56%는 전 세계 인구의 16%에 불과한 고소득 국가에서 이뤄졌다. 29개 저소득 국가는 접종률이 0.1%에 불과했고, 30개 국가는 단 한 사람도 백신을 맞지 못했다. 백신 접종 전부터 우려된 ‘유전무병 무전유병’(돈이 있으면 병이 없고, 돈이 없으면 병이 있다)은 현실이 됐다.

WHO는 일부 나라가 백신을 독점할 수 없도록 지난해 백신 공유 프로그램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구성했지만, 부유한 국가 정부들이 제약사와 선구매 계약을 맺어 초기 물량을 싹쓸이했다.

자력으로 백신을 구할 형편이 되지 않는 나라들은 점점 더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케냐, 모잠비크, 나이지리아, 짐바브웨 등에선 백신을 맞지 못한 의사와 간호사 등이 코로나19에 감염돼 잇따라 사망하면서 의료체계가 붕괴될 위기에 놓였다”고 보도했다. 케냐는 코백스를 통해 지난 2일 처음으로 100만회 분량의 백신을 공급받았다. 약속된 물량의 4분의 1에 불과했고 그나마 계획보다 한 달 늦게 도착했다. 다음 공급이 언제 이뤄질지도 불확실하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상으로도 케냐는 2023년 중반까지 전체 인구의 30% 정도가 접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른 아프리카 저소득 국가들은 백신 접종을 위해 몇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이스라엘과 영국의 접종률이 각각 60%, 41%에 이르는 것과 대비된다. 미국도 오는 5월 말까지 18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백신 접종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빠르게 접종을 확대해 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백신 일부를 저소득 국가에 기부하겠다고 했지만 자국 우선 접종이 원칙이고, ‘남는 백신’을 전달한다는 것이어서 불확실하다. 아프리카는 올해 초 남아프리카공화국발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하루하루가 시급한 상황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해결하기 위해 제약사와 고소득 국가들이 백신 제조·공급 기술을 공유해야 하다는 주장은 외면받고 있다. 지난해 WHO가 연 백신 기술 공유 사이트에 등록한 제약사는 아직 단 한 곳도 없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백신 개발 제약사에 엄청난 공적 자금을 투자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입을 닫고 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매일 격차가 더 커지고 있는 기괴한 상황”이라며 “부유한 나라들에선 젊고 건강한 사람들까지 백신을 맞고 있는데, 이는 가난한 나라 취약층의 접종 기회를 뺏는 도덕적 잔학행위”라고 비판했다.

몇몇 나라가 백신을 독점할 경우 백신을 맞지 못한 나라에서 계속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돼 결국 전 세계가 더 큰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리아 밴 커코브 WHO 코로나19 기술팀장은 이날 회견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계속 확산되면서 6주 만에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증가세를 보였고, 지난주엔 확진자 수도 8% 증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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