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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돈맥경화`…230조 더 풀려도 안쓴다

송민근 기자
입력 : 
2020-10-11 18:31:26
수정 : 
2020-10-11 19: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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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자금 전년대비 23% 급증
증가율·증가액 역대 최대인데
코로나로 소비·투자 연결 안돼
2분기 통화유통 속도 사상 최저

"코로나 안잡히면 회복 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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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을 잃은 시중 부동자금이 가파르게 늘고 있는 가운데 경기 부진으로 돈이 도는 속도 또한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이 때문에 재정·통화당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자금을 풀고 있지만 현장에는 돈이 스며들지 않고 있다. 11일 매일경제가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분석한 결과 시중 부동자금은 1198조원(7월 말 기준)으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3.7%(229조8000억원)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증가율과 증가액 모두 역대 최대치다.

부동자금은 현금 통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자산관리계좌(CMA)를 합산한 금액으로 시중 유동성 중 특히 현금화하기 쉬운 자금을 뜻한다. 지난해 11월 1011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 뒤 8개월여 만에 200조원 더 불어났다.

최근 부동자금이 급증한 것은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가계에 막대한 정책자금을 공급한 데다 시중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까지 낮아진 영향이 직접적이다. 정부는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민생·금융 안정 패키지 프로그램과 기간산업 안정기금으로 175조원을 마련해 지원했으며,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0.5%까지 낮춰 기업과 가계의 이자 부담을 줄이고자 했다.

문제는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생산적인 투자·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자산 가격만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전례없는 수준으로 지원 자금을 공급했지만 실제 투자나 소비로 이어진 금액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며 "시중에 돈은 넘쳐도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유동성 함정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풀린 자금은 많지만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은 역대 최악 상황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이 공급한 유동성이 시장에서 얼마나 유통됐는지 알려주는 통화 유통 속도는 올해 2분기 0.63으로 사상 최저로 떨어졌다. 2018년 0.71, 2019년 0.68까지 떨어진 것이 코로나19로 소비·생산이 동시 위축됨에 따라 더 낮아진 것이다.

통화 유통 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M2로 나눈 값으로, 시중 자금 1원이 부가가치를 얼마나 생산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은행이 공급한 돈이 시중에 얼마나 잘 돌아다니는지 살펴보는 통화승수(광의통화(M2)를 본원통화로 나눈 값)는 7월 기준 14.7배로 지난 5월 사상 처음 15.0배 아래로 가라앉은 후 저공비행을 계속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돈이 돌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인한 생산·소비 위축을 꼽았다. 실제 부동자금이 급증한 7월에 투자와 생산, 소비는 모두 부진을 이어갔다. 통계청 7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2.2% 주저앉았으며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6% 급감했다. 산업생산도 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경제위기를 맞아 필요한 지원책을 펴고 있지만 제1원인인 감염이 통제되지 않기에 돈을 풀어도 경기가 쉽게 살아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앞으로도 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는 계속될 전망이다. 8월 들어 코로나19 확산세가 불붙은 데 더해 기업 생산·투자가 부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8월에도 전 산업 생산지수는 전월보다 0.9% 하락했으며 설비투자도 4.4% 뒷걸음질쳤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시중 자금을 효율적인 부문으로 이끌기 위해 뉴딜 펀드 등을 계획하고 있지만 높은 수익률과 높은 안전성은 모순되는 만큼 효과가 제한적일 거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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