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71시간' 과로 시달리는 택배기사들 "죽을까 두렵다"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 택배물량 급증으로 택배기사가 연이어 과로사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택배노동자들이 정부와 택배사를 향해 실질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택배물량이 크게 증가하는 추석연휴가 다가오기 전 택배 분류작업에 인력을 추가투입해 택배노동자의 노동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에 택배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라"고 촉구했다. 사진은 9일 서울 시내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관계자들이 택배 물품을 분류하는 모습. 2020.9.9/뉴스1

택배노동자들이 주 71시간에 달하는 '과로'에 시달리고 있지만 처우 개선은 없었다. 올해만 과로사로 7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졌다. 노동조건은 열악한데 비대면 경제의 비중은 커져 노동 강도는 강해졌다. '택배노동자 과로사'는 대다수 종사자에게는 떼놓을 수 없는 걱정거리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에도 별다른 대책이 없으면 택배노동자들은 극심한 과로를 겪어야 한다. 11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이들이 처한 노동시간 대비 저임금, 휴식, 안전 등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눈치보지 말고 기업의 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택배노동자들 "과로사 들어봤다…나도 겪을 수 있어 두려워"
대책위는 위와 같은 현실을 담은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실태 조사 결과를 전날 발표했다. 지난달 3~23일 전국 택배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이들의 업무 환경을 분석했다.

대책위는 "택배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장시간 노동을 수행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는 택배 물량을 급격히 늘리는 데 일조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와 기업의 무책임 속에 택배노동자가 무방비 상태로 내몰리는 현실을 알리고자 안전보건 실태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의 98%는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80.4%가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므로 많이 두렵다'고 답했다. '두렵긴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라고 답한 사람은 17.8%이며 '나랑은 상관 없다'는 답은 1.8%였다.


대책위는 "올해 1~8월까지 드러난 택배노동자 과로사가 7건"이라며 "원래 장시간 노동을 수행하는 환경에 최근 코로나19로 급증한 택배 물량의 여파를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과로사 왜 일어나나…'임금·휴식·안전' 등 총체적 난국

(서울=뉴스1) 이성철 기자 =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가 10일 '택배노동자 과로사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대책마련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9.10/뉴스1

대책위에 따르면 택배노동자들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이다. 화~금요일 평균 노동시간은 12.7시간이며, 토요일 10.9시간, 월요일 9.5시간이다. 택배 기사들은 대체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업무시간이 30% 가량 늘었다고 응답했다.

대책위는 "기존 업무의 43%를 차지하던 분류 작업이 코로나19 확산 후 전보다 35%늘었다"며 "이 작업은 소득이 따로 발생하지 않는데 돈 안 되는 작업이 크게 증가한 것"고 해석했다. 여기에 추석 연휴가 오면 평상시보다 50% 이상 택배 물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

택배 노동자가 얻는 실질적 소득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들은 월평균 458만7000원을 받지만 대리점 관리 수수료, 차량 관리비, 경비 등을 제외하면 234만 6000원이 남는다.

대책위는 "70시간의 노동을 감안하면 274만원은 순 소득이 돼야 최저임금을 받는 것"이라며 "자영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물품 사고비용, 각종 소모품·휴대전화 구입비 등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험이나 연금 가입률도 저조했다. 택배노동자의 건강보험 미가입 비율은 약 13%로, 국민연금 미가입률은 약 40%로 나타났다. 산재보험 미가입률은 60%에 달했고 고용보험은 거의 가입한 사람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택배 기사들은 점심 식사에 보통 12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노동자의 36.7%는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고 답했다. 다음으로 △빵이나 김밥 등을 차에서 먹는다(22.2%) △주변 식당에서 먹는다(21.9%) △가져온 도시락을 먹는다(10%) △터미널에서 컵라면을 먹는다(9.2%) 순이다.
"정부는 기업 눈치 그만 보고 조속히 대책 실시해야"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2020.8.25/뉴스1

대책위는 "'구의역 김군' '발전소 김용균'의 업무용 가방에서 나온 컵라면이 연상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1년 중 가장 물량이 많은 추석이 코앞인데 당장 분류작업 인력 투입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기사 1명당 분류 인력 1명이 투입되면 기사들의 근무 시간이 2시간 내외로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책위는 "정부 담당부처인 국토교통부도 택배 노동환경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분류 인력 투입 방안을 준비해놨지만 기업 눈치보느라 권고안을 발표 못하고 있다"며 "정부는 안전보건 실태에 대한 전면적 특별감독을 실시하고 기업은 과로 해결 방법의 즉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