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겨울에 최악의 장마까지… 기상 이변 ‘일상화’ 우려 [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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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기후위기
최근 한반도 빈번한 폭염·태풍 등 겪어
2020년 봄엔 오락가락 기온에 냉·온탕 오가
지난겨울 한파 일수 최저… 가장 따뜻


2020년 여름 전례 없는 최악의 장마가 한반도를 덮쳤다. 지난 6월24일 시작된 중부지역 장마는 12일을 기점으로 50일째 이어지면서 2013년(49일)의 역대 최장 기록까지 갈아치웠다. 중부지방에 앞서 제주 장마 역시 지난 6월10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49일간 지속되면서 1998년(47일)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 장마가 할퀸 상처는 생각보다 깊다. 11일 기준 11개 시·도에서 발생한 이재민은 8000명에 육박하고, 1100여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으며, 도로나 교량이 끊기거나 파손된 곳도 5000곳에 달한다. 특히 농경지와 축사·창고, 비닐하우스 등이 유실되거나 매몰·침수되면서 경제적 손실도 큰 상황이다.

올해 폭우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한반도는 폭염과 온난한 겨울, 빈번한 태풍을 겪었다. 먼일처럼 여겨졌던 기후위기가 우리 눈앞에 당면한 과제가 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냉·온탕 반복한 봄철 기온, 여름철 폭우…따뜻해진 시베리아 탓

올해는 여름철 폭우로 다가왔지만 이미 2018년부터 폭염과 태풍 등 이상기후 현상은 우리나라에 잇따라 등장했다.

지난 3∼5월 봄철 기온은 쌀쌀했다가 더웠다가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널뛰기를 반복했다. 3월 전국 평균기온은 7.9도를 기록했다. 평년 5.9도보다 2도가량 높았다. 이는 1973년 기상관측망을 전국 45개 지점으로 대폭 확충해 통계를 발간한 이후 역대 두번째로 높은 수치다. 4월에는 돌연 추워지더니 역대급으로 추운 날씨(4월 기온 중 44위·하위 5위)가 됐다가, 또다시 5월에는 다시 기온이 상승하면서 평년 수준(17.2도)인 17.7도로 돌아왔다.
이처럼 봄철 기온변동이 심했던 요인은 지구의 기온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3월에는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제트기류(상층의 강한 바람의 띠)에 갇힌 가운데, 시베리아 지역의 기온이 평년보다 2도 이상 높게 유지됐다. 이 차고 건조한 시베리아고기압이 한반도로 내려오는 것을 막으면서 태평양에서 올라온 따뜻한 이동성 고기압이 한반도에 영향을 준 것이다. 반면 4월에는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찬 기운을 묶고 있던 제트기류의 흐름이 약해졌다. 또 바이칼호 북서쪽에 ‘저지고기압’(블로킹·고위도에 정체하거나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 키가 큰 온난고기압)이 정체하면서 차가운 공기가 우리나라까지 내려와 평년보다 기온이 낮아진 것이다.

올해 여름에 폭우가 쏟아진 것과 지난해 겨울 유난히 따뜻했던 것도 북극과 시베리아 지역의 이상고온 탓이다.
지난 5월 기상청은 6~8월 기상전망 예측을 통해 티베트 지역에 평년보다 많은 눈이 쌓여 있어 티베트 고기압 확장이 7월 하순 정도로 늦춰져 우리나라에 무더위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북극 기온이 높아져 제트기류 흐름이 약해지면서 북극의 차가운 공기가 중위도까지 내려왔다. 여기에 우랄산맥과 중국 북동부에서 만들어진 블로킹에 의해 차가운 공기가 중위도에 계속 머물도록 만들었고 확장하는 따뜻한 북태평양고기압이 막히면서 비를 뿌리는 정체전선이 만들어졌다.

◆심상치 않은 해수면 온도 상승과 해빙…한반도 이상기후가 ‘일상’될 수도

지난해 겨울의 평균기온은 3.1도로 평년보다 2.5도나 높아, 1973년 이후 역대 가장 따뜻했던 겨울로 기록됐다. 평균기온뿐만 아니라 최고기온과 최저기온도 각각 8.3도와 영하 1.4도로 대부분 기간의 기온이 평년보다 각각 3.8도, 2.5도 높아 역대 1위를 차지했다. 한파일수도 0.4일로 역대 최저 기록을 세웠다. 평년에는 5.1일마다 추위가 왔다면 지난해는 1일이 채 안 되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포근한 겨울도 시베리아 지역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지역이 평년보다 3도 이상 높아지면서 우리나라로 부는 차고 건조한 북서풍의 영향이 약했다. 동시에 아열대 서태평양의 해수면은 평년보다 온도가 올라가 더욱더 따듯하게 데워져 있었기 때문에 따듯하고 습한 고기압이 겨울에도 힘을 잃지 않고 우리나라에 남풍기류를 몰고 왔다.
지난해에는 태풍에 자주 시달렸다. 지난해 발생한 총 29개 태풍 가운데 7개가 한반도를 휩쓸었다. 평년 3.1개 대비 2배 이상 많은 태풍이 발생한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근대 기상업무를 시작한 1904년 이후 가장 많은 수였다. 태풍의 핵심 에너지원은 바로 해수면 온도의 상승이다. 해수면 온도가 높을수록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태풍을 만들어낸다. 그해 9월까지 필리핀 동쪽 해상의 높은 해수면 온도(29도)로 인해 평년(25.6개)보다 많은 29개의 태풍이 만들어졌고, 그중 7개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앞서 2018년 길고 길었던 폭염과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열대야를 빼놓을 수 없다. 2018년 홍천(41.0도)과 서울(39.6도), 춘천(39.5도) 등 주요 지역은 기상관측 이래 가장 높은 기온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서울은 밤사이 기온도 30.3도로 30도를 넘어서며 관측 이래 최고기온 1위를 나타냈다. 그해 전국 폭염일수와 열대야 일수도 각각 31.4일과 17.7일로 평년보다 9.8일과 5.1일 많아 역시 1위였다. 습하고 더운 북태평양고기압이 이례적으로 강하게 발달해 더운 공기가 지속적으로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데다가 폭염에 영향을 미치는 티베트 지역 고기압이 더해지면서 더위가 강력해진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전례 없는’이란 수식어가 붙는 이상기후 현상이 ‘일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는 해마다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간한 ‘2020 폭염영향보고서’에 따르면 일최고기온과 폭염일수는 증가 추세다.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일최고기온 극값(가장 큰 값)은 1.5도 증가했고, 폭염일수도 6.9일이 늘었다. 보고서는 폭염일수가 21세기 후반기(2071~2100년)에는 22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 결과 발표에서 박태원 전남대 교수(지구과학교육과)는 “한반도 기온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상승하고 있고, 우리나라 기후에 영향을 주는 인도양의 해수면 온도 상승과 북극 지역의 급격한 온도 상승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대륙과 해양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기후변화에 훨씬 민감한 지역으로 앞으로도 그 영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여러 연구자의 공통적 의견”이라고 말했다.

◆中·印 ‘홍수’ 유럽 ‘폭염’… 지구촌 기후재앙에 시름

이상기후는 단순히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현재 지구촌 곳곳에서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발생해 피해가 커지고 있다.
창장에서 범람한 물에 농경지와 주택이 잠긴 중국 안후이성의 한 농촌 지역. 상하이=연합뉴스
중국에서는 두 달째 이어진 홍수로 수천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12일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6월1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발생한 이재민이 5000만명을 넘어섰다. 또 가옥 4만1000여채가 무너지고 5만여㎢에 달하는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등 직접 재산 피해액만 1444억위안(약 24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도에서는 폭우와 홍수가 4개월째 이어져 수천개 마을이 물에 잠겼다. 또 저지대가 많은 방글라데시에서도 폭우로 국토의 3분의 1 정도가 침수된 상태다.

물폭탄이 떨어진 아시아 지역과 달리 유럽 지역은 폭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스페인 북부 해양도시 산세바스티안 지역 기온은 42도까지 올랐다. 스페인 국립기상청(AMET)은 이 같은 고온 현상이 1955년 기록을 작성한 이후 최대 기록이라고 밝혔다. 영국도 지난 7일 런던 서부에 있는 히스로 공항이 36.4도를 기록했다. 2003년 이래 가장 더운 날이다. 이탈리아 14개 도시에는 폭염으로 비상경계령이 내려졌고, 프랑스는 3분의 1에 달하는 101개 구역에 경보가 발령됐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허리케인 ‘이사이아스’가 지나간 뒤 침수지역에 도착한 소방관들의 모습. AP연합뉴스
미국에는 허리케인이 강타했다. 지난 4∼5일(현지시간) 미 동부지역에 허리케인 ‘이사이아스’가 강타해 침수피해가 발생하고, 200만가구가 72시간 동안 정전되기도 했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는 텍사스주에 허리케인 ‘해나’가 상륙해 남부지역에 4만3700가구 이상 정전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에서도 이상고온 현상으로 곳곳에서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러시아 연방항공산림보호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200회가 넘는 산불로 6만7000여㏊ 규모의 산림이 불에 탄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극단적 기상현상이 기후변화의 징후라고 진단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교수이자 그랜섬 기후변화연구소 공동이사인 마틴 지게르트 교수는 지난달 영국 BBC와 인터뷰에서 “더는 지구온난화를 주장할 증거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 앞에 바로 보이고 있다”면서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탄소배출과 지구온난화가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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