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위해 음악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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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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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 무너지는 대중음악계
팬데믹으로 콘서트 줄줄이 중단
최근 6개월간 공연 539건 취소
음레협 “손해액만 1212억 달해”


10여년 동안 대중음악 기획사를 운영해온 A(53)씨는 요즘 밤마다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1990년대 높은 인기를 누린 가수가 엄연히 소속된 기획사 대표이지만 현재는 생계를 위협받는 근로자일 뿐이다. A씨는 “낮에는 소속 가수 출연 섭외를 하느라 방송사 관계자들을 만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한다”며 “당장 회사 운영비는 물론이고 소속 가수 생활비라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자 회사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 연말 시작한 전국투어 콘서트는 단 1회만 진행된 뒤 전면 중단됐다. 당초 10개 지역을 순회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대관 계약비 등은 모두 소속사가 부담해야 했다. A씨는 “최근 연극, 뮤지컬 등은 재개했지만 대중가요는 아직도 암흑기”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몇 개월 더 지속된다면 사업을 접어야 할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지구촌의 K팝 열풍은 단순히 가수들만 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다. 가수와 함께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획사 관계자들부터 작곡·작사가, 안무가는 물론 ‘세션맨’(Session Man)이라 불리는 악기 연주자와 코러스, 그리고 가수를 가르치는 보컬트레이너 등 이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해 왔기 때문에 지금의 세계적 K팝이 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이 무너지고 있다. 8개월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탓에 수입이 전무해지자 각자의 자리를 떠나고 있다. 악기, 마이크 등을 잡았던 손은 이제 택배상자를 나르거나 휴대폰을 팔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음악을 포기했다.

20여년 기타를 쳐왔던 B(35)씨는 보험설계사로 나섰다. 기타를 놓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경제활동’이다. B씨는 “음악에 목마름이 있지만, 공연이나 음반 작업 등 들어오는 일이 없어져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며 “친동생의 권유로 보험설계사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8년 경력의 드러머 C(35)씨는 중고차 판매업을 하고 있다. C씨는 “코로나19 이후 모든 음악활동이 중단되다 보니 경제적 타격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의욕도 많이 떨어졌다”고 털어놓았다. 베이시스트 D(33)씨도 사연은 비슷하다. 21살 때부터 베이스를 다뤘지만 지금은 배달 대행 일을 하고 있다. D씨는 “결혼을 하고 아이 키우는 입장에선 당장 돈벌이가 중요하다”며 “코로나19 발병 이후 모든 공연이 취소돼 돈 들어올 구멍이 막혔다”고 말했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대중가요 발전에 힘써 왔던 이들이 줄줄이 음악을 중단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자 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이하 음레협)는 지난 13일 ‘제2회 코로나19 음악산업 대응책 논의 세미나’를 열었다. 코로나19 이후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대책 마련을 위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음레협 회원사인 레이블 관계자 외에도 뮤지션, 공연장 롤링홀과 브이홀, 한국라이브사운드협회,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충남 문화산업진흥원, 인터파크 등 다양한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참석했다.

음레협에 따르면 지난 2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코로나19로 인한 공연 539건이 취소되고, 손해액은 1212억6685만원에 달한다. 음레협 회원사의 공연은 89건이 취소, 138억699만원의 손해가 발생했다. 회원사와 서울 홍대 일대 공연장을 제외한 전국적으로는 288건이 무산됐고, 1063억8323만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 이규현 음레협회장은 “뮤지션이나 직원 등의 고용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업계 전반이 어려운 상태이며, 이들이 버텨내지 못하면 음반 제작 자체가 중단돼 대중음악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한 뒤 “대중음악 종사자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도 이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발병이라는 특수 상황에 맞춰 예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정민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지역 행사 등 코로나19 때문에 집행이 중단된 사업 예산이 다수 있다”며 “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대중음악 종사자들이 꾸준히 음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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