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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중단후 `존엄사` 선택 11만명 넘었다

서진우 기자
입력 : 
2020-08-16 17:21:00
수정 : 
2020-08-16 23: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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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결정법 시행 2년반

만19세이상 연명의료의향서
67만명 작성…전국민의 1.3%
장기기증희망 등록은 30% 줄어
연명결정→장기기증 선순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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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폐암 말기인 A씨는 가족과 함께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치료가 더 이상 어려워진 걸 알게 된 그는 스스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고 가족 역시 동의했다. A씨는 일반 치료 병동 대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고 결국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뒀다. 국내에서 임종을 앞둔 환자가 인공적인 방법으로 삶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하는 사례가 11만건을 넘어섰다. 지난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 시행 후 존엄사를 귀한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이 늘면서 법 시행 2년 반 만인 올 7월까지 전 국민 중 1.3%에 해당하는 총 11만2239명이 연명치료 대신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국립연명의료 관리기관인 국가생명윤리정책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은 2018년 2만8000여 명에서 지난해 5만2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1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시술을 통해 치료 효과는 없지만 임종 시점만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연명의료 유보·중단 결정 방식은 2가지로 나뉜다. 우선 말기·임종기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가 있고, 만 19세 이상 건강한 성인이 미리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가능하다. 이 가운데 일반 성인이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률도 빠르게 늘고 있다. 존엄사법 시행 첫해인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은 8만명 남짓이었지만 지난해 1년간 45만명가량이 이 서류를 써내 1년 새 6배 가까이 급증했다. 올 7월까지 국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누적 작성자는 총 67만3467명으로 전 국민 중 1.3%에 달한다. 김명희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게 아니라 일부 병원이나 보건소 등을 직접 찾아가 작성해야 하는데 노년층에서 제출자가 가장 많다"며 "이런 제약을 고려할 때 법 시행 2년 반 만에 전 국민 중 1.3%가량이 연명의료를 스스로 미리 결정한 건 예상보다 빠른 추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임종기 환자가 쓰는 연명의료계획서는 남성과 여성 비율이 6대4인 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은 여성이 70%로 남성보다 2배 이상 많은 것도 특징이다.

존엄사법 시행으로 치료 대신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지만 존엄한 죽음 이후 다른 생명을 살리는 장기 기증과 관련해서는 상반된 통계가 나왔다. 질병관리본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장기기증 희망서약서 작성 현황은 2018년 7만763명에서 지난해 9만350명으로 급증했지만 올해는 1월부터 8월 10일까지 4만2000여 건에 그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만2000여 건보다 30% 가까이 감소한 수치다.

장기 기증은 기증자인 뇌사환자 가족 동의에 따라 의료진 판단 아래 시행한다. 일단 뇌사 추정자 신고에 따라 장기이식센터가 있는 병원이나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소속 코디네이터가 급파돼 주치의 면담 후 가족과 상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가족이 서면동의서를 작성하면 의료진이 두 번에 걸친 뇌사 조사를 거쳐 병원 내 뇌사판정위원회 전원 동의에 따라 뇌사를 판정한다. 이후 질본의 장기별 수혜자 선정에 따라 장기 기증 수술이 진행된다. 올해는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굳이 병원을 방문하지 않더라도 보건소나 주민센터, 장기조직기증원, 운전면허시험장 등 전국 400여 곳에서 장기기증 희망서약서를 등록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올 들어 희망서약서 작성 건수는 급감하고 있다. 코로나19 발병 전인 올 1월에는 8353건으로 지난해 1월 5443건보다 많았지만 5월에는 4653건으로 지난해 5월 1만1438건보다 대폭 줄어들었다. 코로나19로 이동 자체를 꺼리는 사람들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존엄사법 시행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늘고 있는 추세와 맞물려 장기기증 희망서약서 작성도 같이 증가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때 장기 기증 의사를 묻는 항목이 없는데 이 질문도 의향서에 포함하는 방안을 도입하는 데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장기기증자 수는 외국과 비교해도 현저하게 뒤처져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를 기준으로 인구 100만명당 장기기증자 수는 한국이 8.7명인 반면 스페인은 49명, 미국은 37명, 프랑스는 33명에 달한다.

[서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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