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수업 속 ‘교육 양극화’…중위권 성적 추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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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7.08. 오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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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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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발 원격수업 장기화 우려

교사들은 ‘진도빼기’
학생들은 학습 결손
교육격차 더 벌어져

고2 중간고사 수학 평균 10점 하락
상위권 ‘자기주도학습’ 성적 유지
중위권은 60점대 이하로 떨어져
사교육 영향 덜받는 국어 변동없어

하반기에도 원격수업 가능성
교육과정 감축없이 동일한 양 수업
진도 못따라가 ‘학습 결손’ 쌓이기만
교육단체 “보충·보정학습 고민해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교육격자 해소를 위한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4월 사상 첫 ‘온라인 개학’으로 대한민국 교육은 ‘원격수업’이라는 한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정부의 ‘생활 속 거리두기’ 전환에 맞춰 5월20일부터 등교수업이 순차적으로 재개됐지만, 코로나19의 지역사회 확산이 잇따르면서 학교 현장은 여전히 원격수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올해 하반기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닥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원격수업이 중심에 놓이는 상황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학교 문이 닫힌 사이, 가정의 역할이 극대화되면서 계층 간 교육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교사들은 등교 뒤 치른 중간고사에서 상위권 학생들은 그대로인 반면, 중위권에 속하던 학생들의 성적이 하위권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전북 지역의 일반고 ㄱ교사는 6월 셋째 주에 치른 중간고사 결과를 두고 “내신 1~2등급인 상위권 학생들의 성적은 예년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3등급 이하부터 영어·수학을 중심으로 점수가 많이 내려갔다”고 말했다. 통상 90점대부터 80점대, 70점대, 60점대가 고루 나오기 마련인데, 특히 수학 과목에서 70~80점대에 몰려 있던 중위권이 60점대 이하로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ㄱ교사는 “학생들도 성적 하락에 놀랐는지 과목별로 개별 지도 신청을 받아보니 중위권 학생들의 신청이 너무 많아 감당이 안 될 정도”라고 전했다.

‘중위권 성적 하락’ 현상은 이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의 한 일반고 ㄴ교사는 “고2 전체 학생들의 중간고사 결과를 지난해 2학기 성적과 비교해보니 국·영·수, 특히 수학 평균 점수가 예년에 비해 10점 정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지필평가 비중이 높고 사교육을 많이 받는 수학 과목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국어의 경우 상대적으로 사교육 영향을 덜 받고 수업 시간에 이뤄지는 수행평가가 많아 성적 변동이 크지 않았다는 게 ㄴ교사의 분석이다.

고등학교처럼 석차를 내지 않는 초등학교나 중학교까지 포함해서 보면, 자녀의 원격수업을 지원하기 어려운 저소득 계층이나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 취약계층에서는 ‘학습 결손’ 문제가 심각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코로나19, 한국 교육의 잠을 깨우다>의 공저자인 황성희(강원대 교육학과 강사)씨는 “학교 말고는 기댈 곳이 없는 취약계층 학생들에게는 교실에서 교사·친구와의 상호작용이 학습을 이어가는 데 일정 정도 역할을 할 수 있는데, 대면수업이 적어지면 그만큼 학습 결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기 다온초의 이충일 교사도 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코로나19 이후, 우리 교육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서 “원격수업이 이뤄지는 공간인 가정 환경의 차이가 교육적 차별을 유발하는 주된 원인이 된다. 다문화나 조손 가정, 장애 학생들이 가장 취약한 고리에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부모가 원격수업을 적극 지원하거나 사교육 활용도를 높이도록 하는 경우엔 대면수업이 줄더라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상위권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황성희씨는 “풍부한 자본력에 기대 학교교육의 공백을 사교육으로 대체 가능한 중상류층 학부모나, 온종일 자녀 곁에서 전방위적인 자녀 관리가 가능한 전업 학부모들은 원격수업을 일종의 ‘호재’로까지 인식하고 있다”고 짚었다.

교육당국에서도 이런 문제를 모르고 있지는 않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등교 개학 연기’ 청와대 국민청원에 답하면서 “가정에서의 원격수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육격차는 우리 교육의 또 다른 고민이 될 수 있기에 등교수업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역시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원격수업으로) 기초학력 부진 학생들이 많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보고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이런 ‘학습 결손’ 문제가 가시화하는 상황인데도, 방역에만 급급한 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학교 등교수업 일수가 부족한 상황에서 교육과정은 감축 없이 동일한 양으로 운영돼 교사들은 주요 교과를 중심으로 ‘진도빼기식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는 진도 속도를 잘 따라가지 못하면 고스란히 학습 결손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ㄴ교사는 “지금은 정규 수업도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라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앞으로 교육격차에 따른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는 “9월에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들어선다고 해도 한번 ‘학습 결손’을 겪은 아이들은 다음 단계를 배울 준비가 안 돼 있을 것”이라며 “이들을 위한 보충·보정 학습이 필요한데, 그런 시간을 만들거나 투자할 자원이 준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원 전 전교조 참교육연구소장은 “가정에서 돌봄 기능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의 학력수준 저하가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어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며 “교육당국은 입시를 코앞에 둔 고3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고 있지만 앞으로 고1과 고2 학생들 내에서 더 크게 벌어질 격차 문제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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