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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수·안유진이 취했다…'초통령 술방' 본 8살 아들 충격 질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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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맥주 이미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 픽사베이(Pixabay)

맥주 이미지.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 픽사베이(Pixabay)

40대 직장인 임모씨는 최근 8세 아들의 질문을 받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들은 한 레몬 탄산주 이름을 언급하며 “술은 맛있어?” “취하면 어떻게 돼?”라고 물었다. ‘초통령(초등학생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걸그룹 멤버가 본인이 광고하는 술을 들고 유튜브 ‘술방(술 마시는 방송)’에 출연한 게 화근이었다. 임씨는 “걸그룹 멤버 이름만 유튜브에 쳐도 술방이 맨 위에 뜬다”라며 “아이들이 유튜브 등에서 술에 무방비하게 노출돼있다”고 말했다.

우후죽순 아이돌 술방에 학부모 가슴 철렁

최근 유명 연예인이 유튜브 술방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아동·청소년 모방 음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술방이나 ‘술터뷰(술+인터뷰)’가 유튜브 대세 콘텐트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최근 한 달 새 블랙핑크 지수, 아이브 안유진, 세븐틴, 수지 등 다수의 인기 아이돌이 유튜브 술방에 출연했다. 이들이 나온 동영상 조회 수는 2일 기준 적게는 350만 회에서 많게는 1530만 회에 이른다. 유튜브에서는 연령 제한 없이 음주 관련 콘텐트에 접근할 수 있는데, ‘취중 진담’처럼 술을 긍정적 매개로 풀어가는 방송이 적지 않다.

여기에는 “이런(술 취한) 모습 자주 보여 달라” “술 주사가 귀여우니 환장하겠다”와 같은 댓글이 달린다. 숏폼(짧은 형식의 동영상) 추세에 따라 술방을 짧게 재편집한 것도 인기를 얻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관련 법이 전무한 탓에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이 유튜브엔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자율 규제에 기대야 하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가 2021년 6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버스·지하철·택시 등 교통수단 내·외부 주류 광고를 금지하며 아동·청소년에 대한 술 노출을 최소화하려 하지만, 유튜브·SNS 등을 통한 ‘규제 사각지대’가 생긴 셈이다.

복지부 모니터링 유명무실…전문가 “규제 시급” 

복지부와 산하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하 개발원)이 TV·유튜브·OTT에서 다뤄지는 음주 미화나 청소년 음주 유도 장면 등을 매년 평가하는 ‘음주 조장 환경 모니터링’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제재 수단이 없으니 사실상 유명무실하단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개발원은 유튜브의 경우 ‘술방’ ‘술 먹방’ ‘음주 방송’으로 검색되는 영상 가운데 조회 수 상위 100개 영상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개발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모니터링 대상 유튜브 영상의 평균 조회 수는 80만 회였고, 이 중 90%에 문제가 있는 음주 장면이 등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아동·청소년의 접근을 막은 영상은 1건도 없었다. 개발원 관계자는 “TV와 같은 방송 매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라도 가능하지만, 유튜브와 같은 통신 매체는 법적 규정이 없어 자율 규제로 권고할 뿐이라 조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와 개발원이 매년 연말쯤 미디어 음주 장면 사례를 담아 사례집을 만드는 정도가 현재로써는 최선이라는 얘기다.

복지부와 개발원의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 자료 복지부

복지부와 개발원의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 자료 복지부

이 때문에 복지부와 개발원은 2017년 만들어진 ‘미디어 음주 장면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음주 장면이 포함된 유튜브 방송에 연령 제한을 권고하는 내용을 담는 걸 검토하고 있다. 개발원 관계자는 “이해관계자 협의 등이 남은 상태”라고 말했다.

유튜브가 제재를 비껴가는 사이 청소년 음주율은 올라가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질병관리청의 ‘2022년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음주율은 2021년 10.7%에서 지난해 13.0%로 2.3%포인트 올랐다.

전문가들은 음주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가볍지 않지만, 음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관대하다는 점 등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원장은 “미국 등 선진국은 청소년에게 끼칠 악영향을 고려해 술 광고에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진솔한 이야기를 술과 함께 나누는 낡은 콘셉트도 이제는 사라질 때”라며 “술이 담배처럼 해롭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야 하고, 해롭기 때문에 똑같이 규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상규 한림대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어렸을 때 술에 노출되고 긍정적인 기억이 있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 중독 등 문제가 생기는 건 명확한 사실”이라며 “한국에서는 이런 논의조차 없기 때문에 인기 연예인이 술 광고를 하는 등 미디어 음주 장면이 바뀌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음주 폐해 예방 사업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나왔다. 이해국 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정부 사업이 모니터링에서만 그치고 있기 때문에 비정부기구(NGO)나 시민단체가 사업에 참여한다면 고발이 이어지고 관련자 책임성을 묻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여론을 환기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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