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마을.’
추리소설에 등장할 법한 이 문구는 지금 우리 앞에 닥친 현실이다. 재개발이나 댐 건설 등으로 사라지는 마을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시골 마을이 인구가 줄면서 자연스레 소멸되는 상황에 처했다. 지난해 아이가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읍·면·동이 40여곳이나 된다. 시골 마을 중 상당수는 새 생명의 탄생도, 이주하는 젊은층도 없이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 몇십년 뒤에는 거주민이 모두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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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한국고용정보원의 ‘지역인구 추이와 국가의 대응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은 97곳(42.5%)에 달한다. 소멸위험지수는 20∼39세 여성 인구(A)를 65세 이상 노인 인구(B)로 나눈 값이다. A가 B보다 적으면 해당 지역은 ‘소멸주의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지수가 0.5 미만(B가 A의 2배 이상)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인구 재생산 주기를 고려할 때 향후 인구 기반이 무너지고 사회경제적 기능이 상실할 수 있는 상태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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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소멸을 막으려면 그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갈 인구를 유입해야 한다.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이 많아지도록 하는 게 절실하다. 많은 지자체에서 출산장려금 등을 주며 출산지원정책을 쓰는 이유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지역 저출산 정책 현황과 발전방안’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전국 224개 지자체에서 264개의 출산지원금 사업을 진행했다. 출산지원사업 예산 규모도 2018년 2600억원에서 지난해 3280억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출산지원금만으로는 저출산이나 인구유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려면 경제적인 지원책보다 아이를 키우는 ‘환경’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고향을 떠나 대구에 거주한 김모(39)씨는 2017년 아내와 다섯 살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이주했다. 김씨의 고향은 대구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작은 마을이다. 도시보다는 자연 친화적인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김씨 가족은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대구로 돌아왔다.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린이집이나 놀이터 같은 시설이 열악한 것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병원이었다. 김씨는 “소아과는 당연히 없었고, 둘째가 생겼는데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도 차로 한 시간 넘게 가야 했다”며 “근처 초등학교는 폐교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곳에서 계속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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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팀장은 “의료·복지·교육·일자리·문화체육 등의 영역 접근성을 높여 아동·청년·여성 친화적 공동체를 조성할 수 있는 인프라와 콘텐츠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도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선 출산장려 정책이 중요하지만 젊은층을 유입하기 위한 기반시설 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유나·배소영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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