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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우울해요" 생명의 전화 두배 늘었는데…상담사는 `통화중`

문가영 기자
입력 : 
2022-09-18 16:45:04
수정 : 
2022-09-18 21:2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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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상담서비스

극단선택 예방 관련 상담건수
한달평균 1만5395건 달하는데
복지부내 상담사는 겨우 52명
실제 응답률 전체 57.9% 수준

고된 업무에 퇴직자도 줄이어
국가공인 자격증 도입 서둘러
정신건강 전문 인력 육성해야
◆ 위기의 생명 인프라 ③ ◆

사진설명
한국인들은 우울감이 극에 달할 때 상담을 신청하려면 혼란부터 느낄 수밖에 없다.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전화번호만 5곳에 달하기 때문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상담 전화는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1393으로 24시간 운영한다. 복지부는 희망의전화 129 또한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평일 일과시간에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만약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이 청소년이면 1388로 걸어야 한다. 여성가족부 산하 1388청소년사이버상담센터가 담당한다. 이 밖에 정신건강 상담 전화 1577-0199, 생명의 전화 1588-9191까지 난립하고 있다.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아무래도 상담 전화 종류가 많으면 전 국민이 누구나 알고 있기 쉽지 않다"면서 "미국은 988로 단일화했고 누구나 알고 있어 쉽게 상담 전화를 걸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상담 서비스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부처마다 상담 전화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어 효율성이 떨어지는 와중에 만성적인 인력 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상담 전화 응답률이 저조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15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월평균 자살예방 상담 전화(1393) 요청 건수는 1만5395건으로 2019년(7457건) 대비 3년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상담 전화가 개설된 2018년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실제 상담이 이뤄진 건수는 전체 57.9%에 불과하다. 급증한 수요 대비 상담사 충원이 저조했던 탓이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상담 건수가 급증한 2020년 9월에는 상담 전화 응대율이 29.4%까지 하락했다.

복지부는 지난 5월 상담사 정원을 기존 57명에서 80명으로 확대했지만 인력 충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6월 기준 자살예방 상담 전화 재직 인원은 56명으로 정원의 70% 수준에 불과했으며 지난달 52명으로 오히려 감소했다.

복지부는 인력 채용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상대적으로 자살예방 상담의 업무 난도가 높아 관련 업무 경력 요건을 충족하는 인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자살예방 상담 전화 직원 52명 중 정신건강임상심리사 등 정신건강전문요원 자격 소지자는 4명에 불과하다. 그 외 사회복지사, 청소년상담사 자격 소지자는 40명이다.

우울증 환자가 급증세를 보이면서 국가공인 자격제도를 도입해 심리 서비스 전문인력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1년 우울증 진료 인원은 134만5829명으로, 2019년(116만8015명) 대비 15% 이상 늘었다. 정신건강임상심리사 등 심리 서비스 관련 국가 자격증이 존재하지만 전문인력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인구 10만명당 정신건강 분야 의사 12.6명, 심리사 18.4명, 사회복지사 5.3명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사회복지사가 6명으로 OECD 평균을 웃도는 반면 정신건강 분야 의사는 5.1명으로 절반 이하에 그친다.

심리상담 인력 육성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올해에만 관련 법안 4개가 국회에 발의됐지만 통과까지는 요원한 상태다. 문제는 심리상담 관련 업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법안이 통과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심리상담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상담업계는 현업에서 종사하고 있는 상담사들이 공인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심리학계는 심리학 관련 전공을 수년간 수학하고 수련을 거치도록 해야만 균일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자격제도의 명칭과 서비스 종류를 둘러싼 논쟁도 치열하다. 상담업계는 상담 업무를 포괄적으로 담당하는 직업을 '상담사' 혹은 '심리상담사'로 지칭하자고 주장한다. 반면 학계는 상담과 더불어 심리검사와 평가, 치료 등 보다 전문적인 심리 서비스를 병행하는 '심리사' 자격제도를 신설하자고 설파한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5월 심리치료라는 용어를 쓰면 의료법에 위반될 수 있으므로 신설되는 자격제도의 서비스 범위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담업계에서는 '심리상담', 의료계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소관인 '심리치료' 시장을 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심리 서비스 관련 자격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한국심리학회에 연구 용역을 맡겨 작년 4월 최종 보고서를 받아봤으나 1년5개월째 법제화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심리 서비스 자격제도와 관련해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부분이 많아 의원 발의된 4개 법안을 검토 중인 상황"이라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용역보고서는 11월이나 12월에 받아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검수를 거쳐 공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문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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