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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2년간 상위 1% 3700만원 쓸때, 하위 20% 3만원 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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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코로나가 무섭다고 집에만 있기엔 너무 지쳤어요. 대신 멀리는 못 가니까 식사와 쇼핑, 구경하기가 다 되는 복합쇼핑몰을 자주 가는 편이에요.”

9살 아이가 있는 최세진(38·서울 옥수동)씨는 “이제 방역지침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필요한 외출이나 모임은 하는 ‘위드 코로나’로 살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2년을 넘어가면서 위축됐던 소비 심리가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부유층은 더 쓰고, 서민층은 지갑을 닫는 소비 양극화가 한층 심해지며 경기침체 속 온도 차는 더 벌어지는 모양새다.

시중 백화점들이 지난 2일부터 새해 첫 정기세일에 들어간 가운데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선 모습. 연합뉴스

시중 백화점들이 지난 2일부터 새해 첫 정기세일에 들어간 가운데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고객들이 개장 시간에 맞춰 줄을 선 모습. 연합뉴스

오미크론 유행에도 쇼핑객 ‘최다’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난 소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로나 충격에서 벗어난 소비.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앙일보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롯데백화점과 롯데아울렛, 롯데몰의 구매 관련 3억7000만여건의 빅데이터를 입수해 24일 분석했다. 그 결과 지난해 직접 매장을 찾아 물건을 산 구매고객 수는 월평균 259만5215명으로, 전년도 약 237만명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특히 지난 연말엔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되살아났지만 구매고객 수는 280만~290만명에 달해 사실상 코로나19에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상위 1%가 매출 3분의 1 차지

전반적인 씀씀이도 커졌다. 지난해 롯데 매장을 찾은 고객 방문 횟수는 6.1일로 전년도 수준을 유지했지만, 하루 객단가(1인당 쓰는 비용)는 2019년 17만원에서 2020년 20만원, 지난해 22만원으로 늘었다. 한번 왔을 때 더 많이 쓰고 간다는 얘기다.

눈에 띄는 건 양극화다. 구매 금액 기준으로 지난해 상위 1% 고객 한 명이 쓴 돈은 3780만1000원으로 코로나 전인 2019년보다 약 23% 증가했다. 이들이 사업장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8%로 3분의 1에 육박한다.
반면 지난해 하위 20% 고객의 객단가는 2만8000원으로 코로나 전보다 오히려 줄었다. 전체적으론 구입액 상위 1~20% 고객의 인당 소비금액은 코로나 전보다 늘었고, 그 이하 고객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상위 10~20% 고객의 객단가는 2019년 189만2000원에서 지난해 195만1000만원으로 3% 이상 늘어났지만, 하위 40~60%에 해당하는 고객은 코로나 전 1년에 인당 36만2000원 쓰던 것을 지난해엔 35만8000원으로 줄였다.

김철관 롯데백화점 데이터 인텔리전스 부문장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구매여력이 있는 고객은 소비 규모가 지속해서 커졌다”며 “구매 상위 1~40% 고객을 놓고 보면 위로 갈수록 객단가와 매출 비중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고 말했다.

코로나 시국에 뚜렷해진 소비 양극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코로나 시국에 뚜렷해진 소비 양극화.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매장별 실적도 극과 극이었다. 롯데백화점에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서울 잠실점과 명동 본점, 부산본점의 경우 지난해 3곳 합산 매출이 3조6625억원으로 2019년보다 5.5%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객단가는 162만4000원으로 52.5%나 급증했다. 이 중 1위인 잠실점 매출은 지난해 1조5535억원으로 2019년 대비 22.1% 늘어 호황을 누렸다.
이에 비해 매출 하위 3개점인 대구 상인점, 건대스타시티점, 마산점의 합산 매출은 3063억원에 그쳤다. 이는 2019년보다 22.3% 감소한 수치로 상위 3개점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인당 300만원 썼다…거센 ‘명품 열풍’ 

어떤 물건 많이 샀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어떤 물건 많이 샀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치솟은 건 역시 명품이었다. 지난해 롯데 매장에서 명품을 구매한 고객은 총 78만4000명으로 전년 대비 8.6% 증가해 전체 상품군 중 고객수가 가장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명품 구매금액도 2조3756억원으로 31.6% 증가했는데, 1인당 약 300만원을 쓴 것으로 나타나 명품 열풍을 반영했다. 김철관 부문장은 “명품 구매 고객의 추정소득은 약 7000만원으로 조금씩 낮아지는 추세고, 연령대도 고르게 퍼져있다”며 “명품의 대중화 추세가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이 밖에 아동·스포츠, 가전·가구, 식음료(F&B), 주방·홈패션 분야의 구매금액이 전년 대비 6~20%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유통업계가 명품과 애슬레저(운동복과 일상복이 결합한 스포츠의류), 식음료, 인테리어 상품군에 힘을 싣는 것과도 맞아 떨어지는 수치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백신접종에 이어 치료약이 나오고 시중에 풀린 유동성 효과가 더해지며 2022년은 코로나 사태의 끝이 보이고, 소비 심리도 더욱 살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비대면 온라인 쇼핑 시장이 커졌지만 백화점이나 쇼핑몰도 ‘원데이 고급 관광지’로 자리잡았다”며 “안목이 높아진 20·30세대 소비자에 맞춰 의·식·주 모든 분야에서 프리미엄 소비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 오프라인 매장의 살길”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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