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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 정해주면 기후 위기 막을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8월 12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내에서 온도계가 화씨 105.9도(섭씨 41도)를 가리키고 있다. 계속되는 지구온난화 추세에 따라 지난해는 세계적으로 6번째로 더운 해였고, 최근 7년 동안은 역사상 가장 더운 시기로 기록됐다. AP=연합뉴스

지난해 8월 12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시내에서 온도계가 화씨 105.9도(섭씨 41도)를 가리키고 있다. 계속되는 지구온난화 추세에 따라 지난해는 세계적으로 6번째로 더운 해였고, 최근 7년 동안은 역사상 가장 더운 시기로 기록됐다. AP=연합뉴스

지난해는 산업화 이전 시기(1850~1900년)보다 지구 평균 기온이 1.1~1.2도 높았습니다. 그리고 최근 7년 동안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따뜻한 시기였다는 게 유럽연합(EU) 산하의 '코페르니쿠스 기후 변화 서비스(C3S)'의 발표입니다.

2022년 새해 들어서도 기후 위기를 막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가 암울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 사회는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실제 각국의 실행 계획을 다 합치면, 지구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묶는 데 역부족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나옵니다.
영국 정부가 18일(현지 시각) 의회에 제출한 '제3차 영국 기후 변화 위험 평가(CCRA3)'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 각국의 기후 정책으로는 2100년까지 지구 기온이 4도까지 오르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어떻게 하면 온실가스 배출을 막고 기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개인에게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할당하고, 그 한도 내에서만 온실가스를 배출하도록 하면 도움이 될까요?
지난 연말 스웨덴의 KTH 왕립 기술연구소와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환경변화연구소 등은 '네이처 지속가능성(Nature Sustainability)' 저널에 개인 탄소 허용량(personal carbon allowances, PCA)을 정하면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실었습니다.

개인에 균등하게 배출량을 할당 

국제 기후행동 주간을 맞은 2019년 9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참가자들이 온실가스 배출 제로와 기후 비상선언 선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국제 기후행동 주간을 맞은 2019년 9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9·21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참가자들이 온실가스 배출 제로와 기후 비상선언 선포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논문에서는 PCA 계획을 "국가의 감축 목표에 따라 모든 성인에게 균등하게 탄소 허용량(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동일하게 개인 허용량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별 목표에 맞게 허용량을 정하고, 국가 목표에 따라 점차 한도를 줄여나간다는 것입니다.

PCA는 가정 난방·취사 연료 사용, 전기 사용, 물 사용, 승용차와 대중교통 이용 등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개인 허용량에서 공제하는 방식으로 설계됩니다. 거래도 가능합니다. 개인 허용량을 초과했다면 개인 탄소 시장에서 허용량에 여유가 있는 사람으로부터 남아도는 '배출권'을 사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합니다.
고소득 국가의 경우 전체 에너지 관련 탄소 배출량의 약 40%를 포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식품과 여러 서비스 관련 탄소 배출량까지도 개인 허용량에 포함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PCA를 도입할 경우 탄소 배출이 많은 활동이나 상품의 경우 비용이 증가하고, 배출량을 줄이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노력에 인센티브가 부여되면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향으로 경제 활동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또, PCA는 사람들이 자신의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을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전체 사회가 탄소 제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개인의 역할을 인식하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사회 정의에 맞게 개인이 어느 정도까지 배출하는 것이 공정한 몫인가 살피는 사회 규범도 마련되리라는 것입니다.

결국 PCA 도입으로 탄소 배출량이 많은 활동이나 상품·서비스의 구매가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개인 탄소 허용량 도입 여건 성숙했다"

지구의날인 지난해 4월 22일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정부에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의날인 지난해 4월 22일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정부에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2000년 이후 영국·프랑스·아일랜드와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PCA를 실시하자는 제안이 몇 차례 등장했지만, 당시에는 여건이 성숙하지 않아 흐지부지됐습니다. 하지만 2022년 지금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PCA를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연구팀의 주장입니다.

우선 기후 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우려가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세계 각국 정부가 2050년 또는 2060년까지 탄소 배출량 제로를 달성하겠다는 약속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도 가능해졌습니다. 정보통신 기술(ICT)이 발전한 덕분입니다.
연구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인해 한국과 중국, 대만 등지에서는 감염 추적을 위한 모바일 앱이 보편화했다는 점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더 큰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추적 앱을 받아들였는데, 향후 개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추적하는 앱을 설계하는 데도 이 기술이 응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앱을 채택할 경우 개인 정보 보호 문제가 대두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사용자 데이터가 익명으로 처리되고, 암호화된 형태로 집계돼야 합니다. 물론 개인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기술 발전이 이뤄지고 있지만, 시민들의 저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 맞춤형 온실가스 감축 방안 제시 

녹색자전거봉사단연합과 울산자전거연합회 구성원들이 2020년 10월 14일 울산 남구 울산대학교 정문 앞에서 국토교통부 시행 광역알뜰교통카드 홍보와 생활온실가스 및 탄소줄이기 자전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스1

녹색자전거봉사단연합과 울산자전거연합회 구성원들이 2020년 10월 14일 울산 남구 울산대학교 정문 앞에서 국토교통부 시행 광역알뜰교통카드 홍보와 생활온실가스 및 탄소줄이기 자전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뉴스1

연구팀은 "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인공지능과 기계 학습 방법이 활용되면,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에 포함된 온실가스 배출량을 분석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방법을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PCA 장점을 강조합니다.

다만, 개인 허용량을 할당할 때 일부 취약 계층의 특수한 여건을 고려해 융통성을 부여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온종일 트럭을 운전해야 하는 자영업자 같은 경우 개인 허용량을 더 많이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PCA를 한국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런 PCA를 전국적으로 동시에 시행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한 다음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또, 자발적으로 PCA에 참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연말 소득 정산 때 혜택을 부여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PCA에 참여하고, 개인 허용량 기준보다 온실가스를 덜 배출했다면 그에 비례해서 세금 감면 혜택을 부여하는 방식 말입니다.

물론 PCA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 겁니다. 다만, 연구팀이 말한 것처럼 PCA보다 더 좋은 방법, 더 나은 묘수는 아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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