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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떨어지고 불안·무기력” 상담 2년 전보다 129% 증가…국민 심리방역도 시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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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호 08면

[SPECIAL REPORT]
코로나 블루, 마음도 위중하다

방역 최일선에 선 의료진도 코로나 블루를 겪는다. 서울 용산역 인근 코로나19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잠시 쉬고 있는 의료진.

방역 최일선에 선 의료진도 코로나 블루를 겪는다. 서울 용산역 인근 코로나19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잠시 쉬고 있는 의료진.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입사 지원 서류만 25군데에 넣은 것 같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온 곳은 5군데도 안 됐다. 코로나19 여파로 채용 숫자 자체를 많이 줄여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진 것 같다. 취업이 영영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걱정에 잠을 설칠 때도 잦다. 자존감도 낮아져 친구들이나 친척들 만나는 것도 꺼려지고 움츠러들더라.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감도 생긴 것 같다.”

지난해 2월 수도권의 한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 김건욱(27)씨의 얘기다. 김씨는 “다들 힘든 시기라 어디에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데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을 휴학 중인 이연수(24)씨는 6개월 전 알바를 하던 편의점 일을 그만뒀다. 코로나19로 매출이 많이 줄어든 점주가 더는 알바생을 쓰기 힘들다고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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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선택 생각해본 적 있다” 16%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해외여행 등 일상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해외 입국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해외여행 등 일상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해외 입국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몇 달째 적당한 알바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자리다. 어렵다고 해도 벌써 취업한 친구도 있는데 알바 자리도 못 구하는 내가 무능력자라는 자괴감이 들더라. 엄마와 통화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그 후엔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어 멍하니 있을 때도 많다. 어디 가서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할 정도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우울감과 불안·무기력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전 국민 백신 접종률이 80%를 넘어서면서 머지않아 코로나 사태가 끝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의 출현에다 신규 확진자 수가 7000명을 넘어서면서 “앞으로도 최소한 1~2년은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것 아니냐” 비관적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 언제부턴가 ‘코로나19’와 우울감을 의미하는 ‘블루(blue)’의 합성어인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코로나 블루 증상은 연령과 세대, 직업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코로나19에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외부 활동이 제약되면서 느끼는 무력감, 자신감과 자존감 상실, 감염병 관련 정보와 뉴스에 대한 과도한 집착, 주변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 증가와 분노 표출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실제로 14일 질병관리청이 발표한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성질환뿐 아니라 특히 정신건강이 전년도보다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수년간 감소 추세를 보였던 우울장애 유병률이 5.7%로 증가했다. 남자는 30대가, 여자는 20대의 정신건강이 가장 악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20대 여자는 11.3%로 남녀 연령을 통틀어 유일하게 두 자릿수를 보였다. 30대 남자는 전년보다 4.1%포인트 증가하며, 남녀 연령대별 전체에서 가장 큰 증가 폭을 보였다.

지난 3월 발표된 또 다른 조사에서도 코로나19가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의 ‘코로나19 국민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우울척도가 코로나19 이전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척도는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일 경우 고위험군으로 분류된다. 이전에는 고위험군 비중이 20% 미만이었는데 올해에는(3월 기준) 22.8%를 기록했다. 또 자살을 생각해본 적 있다는 사람도 16%나 되는 등 전문가들은 상당히 위험한 수준으로 진단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정재훈 아주편한병원 원장은 “코로나19라는 감염병 재난 사태가 발생해 국민의 불안 정도가 이전보다 높아졌다”며 “감염 재난은 죽음의 공포와도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일반 국민 중 불안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상담 건수도 대폭 증가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총 상담 건수는 126만 9756여건으로 전년도 대비 44.5% 늘었다. 또 올 상반기 상담 건수는 101만 711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8.8% 증가했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상반기와 비교하면 129%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소상공인 상당수는 매출 감소에 따른 폐업 고민, 임대료 체납 등 다양한 이유로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서울 신촌에서 맥주 가게를 15년째 하고 있는 이재식 사장(51)은 “매장 손님 위주로 장사하는 입장에서 최근 거리두기를 다시 강화한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가 막막하다. 올 초부터 배달 위주 업종으로 바꾸려고 고민도 해봤는데 쉽지 않았다”며 “나 혼자 아무리 애를 써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스트레스만 쌓이고, 코로나 관련 뉴스만 봐도 오락가락 방역 대책에 화도 나 쌍욕이 튀어나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의료진 33% 중증도 우울증 진단

방역대책도 수시로 변하고 있다. 서울시청 전광판에 떠 있는 ‘거리두기시민행동지침’. [뉴스1]

방역대책도 수시로 변하고 있다. 서울시청 전광판에 떠 있는 ‘거리두기시민행동지침’. [뉴스1]

코로나 바이러스와 현장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의료진이 느끼는 스트레스와 무력감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기도 한 대학병원에서 4년째 간호사로 일하는 이명선(32)씨는 “직업적 사명감만 가지고 버티기에는 힘든 상황”이라며 “집에 오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속에 늘 뭔가가 짓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기 어려운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병원 감염내과에서 일하는 전문의 박석운(43·가명)씨도 “겉으로 내색을 잘 안 하지만 의료진이 받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로감은 생각 이상으로 상당히 높다”며 “경험이 많은 전문의뿐만 아니라 후배 전공의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얼마 전 전공의 생활을 하고 있는 의과대학 후배 한명이 전화를 해 왔다. 최근 코로나 중증 환자가 늘어나 다시 힘든 상황이라고 호소하더라. 딱히 위로할 방법이 없었다. 최근 당직 근무도 늘었다는 후배는 집에 오면 ‘번 아웃’(burn out·에너지가 소진돼 무력감에 빠진 상태) 상태가 돼 2살짜리 아이와 맘 편히 시간을 보내는 것도 힘든 상황이라고 해 마음이 아프더라. 의료진이 겪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피로감, 우울증은 일반인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박씨의 말처럼 실제로 코로나 블루 현상은 의료진에게 늘 따라다니는 ‘동반자’나 다름없다. 최근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서정석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국·공립병원 의료진을 대상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의료진 99명을 대상으로 12개 항목으로 구성된 정신 건강 척도(GHQ-12)와 9개 항목의 우울증 진단 척도(PHQ-9)를 통해 정신적 스트레스를 분석한 결과다. 99명 중 45명(45.5%)이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여성 의료진이고 미혼일수록 그 스트레스는 더 심각했다. 정신과적 치료가 필요할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는 의료진도 적지 않았다. 우울증 진단 척도인 PHQ-9 검사에서 33.3%가 10점 이상으로 나왔다. 10점 이상이면 중등도의 우울증을 나타낸다고 한다. 연구팀은 “대다수 의료진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우울증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조사돼 심각한 문제”라며 “코로나 대응 현장에 있는 의료진에 대한 적절한 심리적 개입, 의료진 지원 시스템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 때”라고 분석했다.

노년층이 겪는 코로나 블루는 젊은 세대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서울 노량진에 사는 김충선 할아버지(82)는 1인 독거 세대다. 코로나 사태가 오기 전에는 복지관에서 친구들과 장기도 두고 식사를 해결하며 외로움을 달랬다. 김씨는 “1년 6개월 넘게 복지관 출입이 제한돼 갈 곳이 마땅치 않다”며 “요즘에는 날씨가 추워져 집에만 머무를 때가 많다. 외로움에 익숙해졌고, 바라는 것도 많지 않은 나이라지만 지금처럼 갈 곳도 없고, 정신적으로 힘든 적은 없었다. 의료단체에서 분기별로 봉사하러 오던 상담사의 발길도 끊겨 가끔이나마 마음속 얘기를 나눌 상대도 없어졌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업무 스트레스 풀 취미 갖는 게 좋아”

지난 11일 수능을 앞두고 대전 유성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는 원격 수업이 진행됐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수능을 앞두고 대전 유성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는 원격 수업이 진행됐다. [연합뉴스]

코로나 장기화로 직장 문화가 바뀌고 기업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치밀한 인력 관리에 구멍이 생겨 기업의 역동성도 많이 약화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경기도 평택에서 제조업 관련 회사를 운영하는 최상진 대표(63)는 “비대면 회의가 늘고, 재택 순환 근무를 하다 보니 예전보다 회사 운영에도 제약이 있다”며 “직원들과 회식 자리에서 서로 사적인 고민도 나눌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자리를 만드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 아쉬울 때가 있다”고 했다. 최 대표는 “자주 대면 접촉과 소통을 해야 애사심도 생기고 회사에도 활력이 생길 텐데 요즘에는 코로나 때문에 생산라인이 혹시라도 멈출까 하는 걱정뿐”이라고 했다. 한 의류 관련 기업의 블라인드 앱에는 코로나가 불필요한 내부갈등을 키웠다는 사례를 소개한 글도 올라왔다.

“올 초 코로나 3차 확산 때 필수 인력 외에 사무직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하도록 회사 방침이 정해졌는데, 일부 시니어 부서장들은 젊은 직원들이 집에서 제대로 일을 안 한다는 불만이 많다는 얘기가 들렸다. 카톡 지시에 제때 응답을 하지 못했다고 질책을 받는 일도 벌어졌다. 눈치 보고 일하느니 차라리 회사에 나가 일하는 것이 속편 할 정도다. 상하 간에쓸데없는 갈등만 생기는 것 같아 재택근무가 절대 편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적 스트레스와 부담만 더 쌓인다.”

규모가 큰 일부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불만과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해 심리상담사를 통해 직원들의 정신건강까지 챙기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중소업체 대부분은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물리적 방역이 최우선이지만 심리방역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국가트라우마센터와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으로 구성된 ‘통합심리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마음건강 지키기’ 등 우울 극복을 위한 심리 지원과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찾아가는 상담소’ 등을 운영하는 지자체들도 늘고 있다. 외부 프로그램이나 심리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일상에서 이를 극복하려는 개인의 노력이 더해져야 심리방역에 효과가 있다. 이경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좋다”며 “오랜시간 책상에서 정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야외활동 같은 동적인 취미를, 몸을 자주 쓰는 일을 하는 이들은 반대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정적인 취미를 갖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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