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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킹·클라이밍·조깅…뭐든 ‘~ing’ 해야 팬데믹 이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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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호 10면

[SPECIAL REPORT]
코로나 블루, 마음도 위중하다

코로나 블루를 이기기 위해서는 운동과 야외 활동이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겨울 덕유산에서 산행 중인 등산객들. 김홍준 기자

코로나 블루를 이기기 위해서는 운동과 야외 활동이 효과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겨울 덕유산에서 산행 중인 등산객들. 김홍준 기자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대답은 똑같았다. “영하 10도라도, 바람만 안 불면 암벽등반을 할 수 있다고요.”

이 말을 한 송명진(54·경기도 고양)씨 외에 40여 명은 지난 12일 경기도 용인시 조비산(295m) 암장에서 띄엄띄엄 등반하고 있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어떤 이는 반팔 티만 입고 일명 ‘동굴’의 천장에 붙어 해가 비치는 ‘밖’의 수직 벽으로 나가고 있었다. 어떤 이는 아예 웃통을 벗기도 했다. 강길성(51·경기도 광주)씨는 “등반 도중에는 춥다는 생각도 못 할 정도로 집중하게 된다”며 “등반 뒤에는 팬데믹으로 처진 마음을 일으켜 세워줄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울, 영하권 날씨에도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조비산은 클라이머들의 열기로 뜨겁다. 지난 12월 12일 클라이머들이 조비산 '동굴'에서 등반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한겨울, 영하권 날씨에도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조비산은 클라이머들의 열기로 뜨겁다. 지난 12월 12일 클라이머들이 조비산 '동굴'에서 등반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2년 가까이 진행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사람들을 ‘안’으로 몰아넣었다. 재택근무와 자가격리, 심지어 재택치료라는 물리적 내부와 우울함과 답답함, 무미건조함이라는 심리적 막다름까지. 자가격리·거리두기 등 낯설었던 용어는 낯선 환경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심지어 즐겨야 코로나 시대를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통상 겨울에는 일조량이 적어져 일시적 우울증이 올 수 있는데, 코로나19가 겹쳐 실내 활동이 많아진 현 상황에서는 더 유의해야 한다”며 “실내에서는 취침·기상, 식사 시간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밖에서는 햇볕을 쬐면서 운동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특별히 운동을 안 해 온 사람이라면, 모든 운동의 기본이 되는 걷기부터 천천히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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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라는 낯선 환경 그 자체를 즐겨야

조비산에서 고난도 루트를 오르며 집중하고 있는 클라이머. 하강 뒤엔 마스크 착용부터 한다. 김홍준 기자

조비산에서 고난도 루트를 오르며 집중하고 있는 클라이머. 하강 뒤엔 마스크 착용부터 한다. 김홍준 기자

하이킹(hiking)·트레킹(trekking)·클라이밍(climbing)·마운티니어링(mountaineering). 구분이 애매한 이 네 가지는 걷기(워킹·walking)를 토대로 한다.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명예교장은 “쉽게 구분하자면 하이킹은 비교적 평탄한 지리산 둘레길, 트레킹은 좀 더 힘든 북한산 백운대를 걷는 것인데 둘 다 수평적 개념이 강하다”며 "클라이밍은 암벽·빙벽을 오른다는 수직적 개념이 강하고, 마운티니어링은 클라이밍·캠핑·비박(bivouac, 텐트 없이 자연에서의 노숙을 뜻함) 등 자연, 특히 산에서의 행위를 아우르는 폭넓은 ‘등산’의 개념”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암벽등반도 걷기라니. 이용대 교장은 “길의 기울기만 가파를 뿐, 등반은 이른바 ‘발자리’와 ‘손자리’를 찾으면서 ‘구태여’ 힘들게 걸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21일 이른 오전. 서울 은평구 구파발역 근처에는 하이킹·트레킹·클라이밍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서울둘레길 7코스 봉산·앵봉산 코스와 북한산 둘레길 9구간 마실길이 있다. 차림새만큼 사람들은 가볍게 하이킹을 즐긴다. 가까운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삼송동에서 온 이승희(43)씨는 “둘레길을 좀 걷고 북한산이 보이는 베이커리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가벼워질 수 없다”고 했다.

대한걷기협회 관계자는 “체력이 약한 사람이나 고령자라도 자신의 페이스로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는 게 워킹”이라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운동”이라고 말했다.

등산객들이 북한산 서암문을 나서고 있다. 코로나 영향으로 국립공원 전체 탐방객 수는 줄았지만, 접근성이 좋은 북한산 국립공원은 오히랴 찾는 이가 늘었다. 김홍준 기자

등산객들이 북한산 서암문을 나서고 있다. 코로나 영향으로 국립공원 전체 탐방객 수는 줄았지만, 접근성이 좋은 북한산 국립공원은 오히랴 찾는 이가 늘었다. 김홍준 기자

구파발역 앞 버스 정류장에는 꽤 많은 사람이 북한산 트레킹을 위해 줄 서 있었다. 북한산 의상봉 코스를 간다는 정모(62)씨는 배낭 안에 다기(茶器)가 있단다. 그는 “북한산 트레킹 코스 중 가장 뛰어난 의상봉 꼭대기에서 녹차 한 잔 우려 마시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라고 밝혔다.

외국인도 종종 눈에 띈다. 우리나라 최대 외국인 등산모임 CIK의 김성원(58) 대장은 “외국인들은 등산을 통해 한국 문화에 눈을 뜬다”며 “이렇게 전철역 인근에 커다란 산이 있다는 걸 신기해한다”고 했다. 구파발역 근처에는 인공암벽장이 있다. 장비 잔뜩 들어간 배낭을 메고 북한산 노적봉으로 향하는 클라이머들도 보였다. 구파발역이라는 한 장소에서 ‘걷기’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이렇게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 걷는 사람들이 늘었다. 팬데믹 2년간 국립공원 전체 탐방객수는 줄었지만, 북한산·계룡산·치악산 탐방객 수는 오히려 늘었다〈그래픽 참조〉.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교통이 좋고 가족끼리 저지대에서 하이킹을 즐기거나 캠핑을 할 수 있는 도심권 공원 탐방이 늘었다”고 밝혔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탁 트인곳에서 소규모 생태 체험을 하는 게 코로나 시대의 트렌드”라고 분석했다.
이경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기초 체력이 튼튼해야 정신 건강도 탄탄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로나19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밖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빨리 걷거나, 가능하면 뛰는 게 좋다”며 “물론 방역 수칙을 먼저 지켜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밝혔다.

“체력 튼튼해야 정신 건강도 탄탄”
이달 13일. 북한산 수리봉(일명 족두리봉)에는 한겨울에도 클라이밍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명부(54·서울 은평구)씨는 “겨울이라도 암장이 남쪽을 향해 있어 따뜻한 편인 데다가 오히려 공기가 건조해져 바위 마찰력이 좋아진다”며 “혹시 눈이 잠깐 내리더라도 빗자루로 쓸어낸 뒤 다시 등반하는 게 수리봉 클라이머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주말 하루 등반에 일주일 치 자신감을 얻고 간다”며 코로나19 속에도 마음을 다스린다고 털어놨다.

 실내 암장에서 강사의 시범에 집중하고 있는 클라이머들. 실내 암장은 야외 자연 암장으로 가기 위한 트레이닝 센터이자 그 자체만으로 성취감과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김홍준 기자

실내 암장에서 강사의 시범에 집중하고 있는 클라이머들. 실내 암장은 야외 자연 암장으로 가기 위한 트레이닝 센터이자 그 자체만으로 성취감과 즐거움을 추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김홍준 기자

목표는 오직 하나였기 때문에, 마스크가 땀과 거친 호흡에 밀려 어느새 흘러내렸지만 클라이머는 전혀 몰랐다. 지난 12월 15일 인천시 ICN 디스커버리에서 한 클라이머가 등반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목표는 오직 하나였기 때문에, 마스크가 땀과 거친 호흡에 밀려 어느새 흘러내렸지만 클라이머는 전혀 몰랐다. 지난 12월 15일 인천시 ICN 디스커버리에서 한 클라이머가 등반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클라이밍은 최근 2030 세대를 급격히 불러들였다. 이들은 클라이밍 중에도 문제풀이 식 ‘볼더링’을 즐긴다. 지난 15일 인천시 ICN디스커버리에서 만난 김모(30·서울 강북구)씨는 “친구가 실내 볼더링을 소개해 줘 시작한 지 1년 남짓”이라며 “친구들과 이렇게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 된다”고 밝혔다. 옆에 있던 고재성(62·서울 강서구)씨는 40년 베테랑이다. 그는 “나도 자영업자라 여러 어려움을 겪어 왔지만, 지금처럼 더 어려울 때는 클라이밍을 통한 성취감이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캠핑과 백패킹은 야외 ‘활동’이자 야외 ‘휴식’이기도 하다. [사진 민미정]

캠핑과 백패킹은 야외 ‘활동’이자 야외 ‘휴식’이기도 하다. [사진 민미정]

다시 12일 조비산, 클라이머들이 도착하기 전에 서울 송파구에서 온 윤모(32)씨가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조비산에 동굴이 있는데, 겨울에 백패킹 하기에 딱 좋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백패커들은 클라이머들이 오기 전에 싹 짐 정리를 하고 빠진 것. 순조로운 ‘임무 교대’였다. 백패킹은 하이킹·트레킹·캠핑을 결합한 레저다. 민미정(43) 백패킹 전문가는 “자연과 밀착할 나의 ‘또 다른 집’을 짓고, 나만의 공간이 된 그 안에서 조용히 마음을 다듬을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며 백패킹의 매력을 강조했다.

권도균(34·충남 서산)씨도 트레킹을 한다. 그런데 매번 본인 소유의 자동차 20대 중 한 대를 몰고 산에 오른다. 그는 “무선조정자동차(RC 카) 취미를 5년 전 갖게 되면서 산을 좋아하게 되고 몸이 튼튼해지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동호인이 경기도 안양 삼성산에서 산행과 무선조종 자동차(RC카) 운전을 동시에 즐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한 동호인이 경기도 안양 삼성산에서 산행과 무선조종 자동차(RC카) 운전을 동시에 즐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야외 활동은 분명히 코로나19를 이기는 데 정신적, 신체적으로 실보다 득이 크다”며 “문제는 운동과 활동 뒤의 실내 모임이지, 야외 활동 자체는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다만 캠핑이나 백패킹 중 일산화탄소 중독, 클라이밍 중 추락 등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달리기와 조깅 등 '러닝'을 즐기는 2030 '런린이'들. 경기도 고양 화정에서 뛰고 있는 최진슬씨는 보디프로필을 찍은 '헬린이'이기도 하다(왼쪽). 오른쪽 위는 경기도 고양 일산의 러닝크루 '러니스(Runis)'가 호수공원에서 뛰는 모습. 그 아래 사진은 이보경(앞에서 두 번째)씨 등 YRC(여의도 러닝크루)가 달리는 모습. [사진 최진슬·이보경]

달리기와 조깅 등 '러닝'을 즐기는 2030 '런린이'들. 경기도 고양 화정에서 뛰고 있는 최진슬씨는 보디프로필을 찍은 '헬린이'이기도 하다(왼쪽). 오른쪽 위는 경기도 고양 일산의 러닝크루 '러니스(Runis)'가 호수공원에서 뛰는 모습. 그 아래 사진은 이보경(앞에서 두 번째)씨 등 YRC(여의도 러닝크루)가 달리는 모습. [사진 최진슬·이보경]

물론 아웃도어가 코로나 블루를 이기기 위한 활동의 전부가 아니다. ‘거리두기’가 가능한 헬스나 사이클링·테니스·배드민턴, 혼자 할 수 있는 조깅·요가·필라테스 등도 있다. 스트레칭을 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이다. 김유겸 교수는 “스트레칭은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와 행위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카펜터링(목공예)·플랜팅·드로잉 등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취미도 뜬다. 하이킹·트레킹·클라이밍·백패킹·조깅·스트레칭… . 모두 ‘ing’로 끝난다. 바로 지금 무엇인가 진행(~ing)해야 코로나19를 이길 수 있다. 화이팅(fighting)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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