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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재난은 보이지 않는 적과의 긴긴 싸움…우울감 당연, 이타심이 가장 좋은 마음 방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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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7호 09면

[SPECIAL REPORT]
코로나 블루, 마음도 위중하다

14일 오후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빌딩에서 만난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준희 기자

14일 오후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빌딩에서 만난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정준희 기자

“코로나19는 전 국민이 재난 피해자인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전에 재난 피해자들을 조사할 때나 나왔던 결과가 일반인 대상 조사에서 나오고 있다.”

감염병이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해 온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얘기다. 그는 코로나19가 국민 정신건강 및 사회심리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두 번의 양적 연구를 진행했다.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전국 성인, 청소년 1150명을 대상으로 1차, 7월부터 9월까지 1015명을 대상으로 2차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우울과 불안 지표가 코로나19 발생 전에 비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 중증도가 중간 이상인 중증 이상 우울 위험군에 속하는 사람이 28%(1차), 24%(2차)에 달했다. 국민 4명 중 1명이 중증 이상 우울 증상을 가지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우울증 평균 유병률 3.2%와 비교하면 7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마음 방역이 필요한 이유다. 코로나 블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지난 14일 백종우 교수를 만났다.

코로나 블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다. 흔히 산후 우울감을 ‘포스파텀 블루(postpartum blue)’라고 부른다. 우울증(depression·디프레션)이 아니라 우울감(blue·블루)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산모의 90%가  느끼는 정상적인 감정이기 때문이다. 학술 용어는 아니지만 코로나 블루도 코로나19로 우울감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겪어보지 못한 재난 상황에서는 당연히 힘들고 우울해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정상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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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재난 이후 집단 반응 과정이 궁금하다.
“보통 재난 직후에는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이후 재난을 함께 극복하고자 결속력이 증가하는 허니문 단계가 찾아온다. 이때 단결력이 상승하고, 사회적 연대가 복원된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어려움에 직면하면 다시 불안·우울·분노·혐오가 나타난다. 지도자의 망언, 제도적인 허점 등 사람에 의해 2차, 3차적으로 부정적 감정이 고조되기도 한다. 지난해 2~3월 코로나19 발생 직후에도 불안 반응이 높았다. 이후 여러 극복 챌린지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울과 함께 분노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다른 재난과 다른 점은.
“감염 재난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언제 감염될 지 모른다. 지속 기간도 길다. 언제 끝날지도 모른다. 태풍, 지진, 화재 등 다른 재난이 단기간에 끝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재난 관련자의 범위도 특정할 수 없다. 다른 재난에서는 유족 등 관련자 범주가 정해져 있고, 다른 국민은 소식을 전해 듣고 2차적으로 슬퍼한다. 하지만 감염 재난은 누구든 감염자, 감염자의 가족이 될 수 있다. 범주를 특정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 확산됐다. 세월호 등 최근에 발생한 재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스페인 독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재난 상황이다. 그나마 기술이 발전해서 백신과 치료제로 바이러스를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실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상담하는 사람도 늘었나.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소아청소년과, 이비인후과의 건강보험 진료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반면, 정신건강의학과 매출은 17% 상승했다. 물론 치료율이 높아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분이 코로나19로 인해 병원 방문을 꺼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코로나19로 우울감을 느낀 분들이 많았다는 의미다. 특히 기존에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앓았던 분들의 재발 사례가 많았다.”
17일 서울 여의도 선별진료소 앞에서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17일 서울 여의도 선별진료소 앞에서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주로 어떤 증상을 호소하나.
“스트레스 요인과 증상에 따라 다르다. 거리두기로 인해 좋아하는 것을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못 만나서 무기력감이 생긴 사례도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세대별로도 양상이 다르다. 2030세대는 취업 등 경제적인 문제와 더불어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중장년층 자영업자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노년층은 건강에 대한 염려가 높다. 특히 만성 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은 제때 진료를 받기가 어려워질까 하는 걱정이 크다. 불안 증상이 심해지면 대개 불면증으로 이어진다.”
더 주목해야 하는 세대가 있다면.
“2030세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의 모든 검사 결과 2030세대의 우울과 불안이 가장 높다. 특히 20대 정신 건강에 주목해야 한다. 안 그래도 안 좋았던 20대 정신 건강이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악화됐다. 20대는 대부분 대학생, 취업준비생, 혹은 이제 막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다. 새로운 경험도 못 하고, 새로운 사람도 못 만나니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이면서 취업준비생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도 굉장히 높아졌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진료실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20대를 많이 만났다.”
코로나 블루,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규칙적인 생활 유지가 중요하다. 전보다 많아진 시간을 그동안 못했던 취미에 쓰면 좋다. 또 대면 모임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겠지만 원격으로라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타적인 감정을 가지는 것이다. 감염 재난으로 격리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후유증 없이 잘 회복한 사람은 주변에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를 느낀 사람이다. 중요한 이 시기에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상대방을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된다.”
코로나19 이후 2년이 지난 지금이 중요한 이유는.
“질적 조사 결과를 분석해보면 코로나19를 잘 견딘 이들에게는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는 물질적·정신적 자원이 있었다. 물질적·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취약 집단은 2년이 지난 지금 굉장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실제로 동일본 대지진 발생 2년 후에 자살률이 올라갔다. 초반에는 같이 이겨내자는 연대의식으로 괜찮았지만 2년이 지나고도 변화가 없는 현실에 절망이 시작되면서 중장년층 자살이 늘었다. 최근 코로나19 치료 현장에서도 분노, 짜증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유지해 온 공동체 연대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험 신호다. 코로나19 시기에 정신건강을 위한 국가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국가가 국민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마련해야 사회 공동체가 잘 유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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