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따라 극단선택..20대 여성 다음엔 50대 남성 많다
1993~2013년 유명인 10명 사례
인구 10만명당 모방 사망 증가수
20대 여성 23명, 50대 남성 21명
10대가 오히려 덜 민감하게 반응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직후 일반인 사이에 모방 자살이 이어질 위험도가 높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런 모방 자살 위험도가 성·연령별로 다르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김남국, 울산의대 황정은 교수팀은 1993년부터 20년 간 국내 대표적인 유명인 자살 사례 10건이 일반인의 모방 자살 위험에 미치는 영향을 성과 연령별로 나눠 분석한 결과 20대 여성이 가장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17일 밝혔다.
‘베르테르 효과’라고도 불리는 모방 자살 현상은 유명인이나 대중이 선망하던 사람이 자살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그 인물을 따라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말한다.
덴마크, 유명인 SNS 자해 글 규제 검토
국내에서 베르테르 효과는 자살을 촉발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2013년 이후 4년 연속 낮아지던 국내 자살률은 지난해 10만 명당 26.6명으로 2017년(24.3명)에 비해 9.5% 늘어났다. 정부는 꺾이는줄 알았던 자살률이 다시 고개를 든 가장 큰 원인으로 베르테르 효과를 꼽았다.
연구팀은 연도·계절별 자살 건수 증가율을 고려해 그 시점에 예상되는 자살 건수를 계산하고 그보다 자살이 늘어나면 모방 자살로 간주했다. 모방 자살 강도는 예상 자살 건수 대비 실제 자살 건수를, 모방 자살 사망률은 10만 명당 모방 자살 사망자 수를 의미한다.
분석 결과 20대 여성의 모방 자살 강도가 평균 약 2.31배, 모방 자살 사망률은 약 22.7명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모방 자살 위험에 가장 민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이한 점은 50대 남성에게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모방 자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는 50대 남성의 모방 자살 강도는 약 1.29배로 다른 집단들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모방 자살 사망률은 20대 여성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약 20.5명이 증가해 유명인 자살 소식에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김남국 교수는 “50대 남성들이 여러가지 힘든 스트레스 요인에 상대적으로 더 노출돼 있다 보니 유명인 자살을 계기로 마음이 약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방 자살 강도는 20대 여성, 30대 여성, 20대 남성 순으로 높았고, 유명인 자살 이후 모방 자살 사망률은 20대 여성, 50대 남성, 60대 남성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연예인 팬층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는 의외로 성인에 비해 모방 자살에 민감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는 “연구를 시작할 때는 사망 유명인과 성별·나이대가 비슷한 이들이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뚜렷한 차이점이 보이지 않았다”라며 “베르테르 효과에 취약한 계층을 미리 파악해서 유명인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연락을 취해 병원 진료를 권하거나 혼자 남겨져있지 않도록 하는 등의 촘촘한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극단선택 수단 등 보도 신중하게 해야”
카를로 아너센 덴마크 보건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그동안 신문이나 방송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와의 협업을 통해 자살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실제 효과도 거뒀다. 하지만 SNS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유명인들이 SNS에 글을 쓸 때는 언론과 마찬가지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덴마크는 1980년 10만 명당 38명이던 자살률을 2007년 11명까지 떨어트렸고 현재까지 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메레테 놀덴토프트 덴마크국립자살예방연구소장은 “2000년대 이전엔 약물 용량을 줄이고 가정용 가스의 일산화탄소 농도를 줄이는 등 자살 수단을 제거하는게 자살률 감소에 효과적이었다. 2000년대 이후엔 우울증 조기 치료, 미디어 협업 등 사회·정신적인 개입 정책이 효과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회자살예방포럼 공동대표인 주승용 국회부의장은 “미디어를 통해 자살 수단 등이 적나라하게 알려지는 경우 유명인 자살의 사회적 여파가 더 커진다. 자살 보도를 좀 더 신중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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