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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1도만 올라도 `전염병 대란`…김밥 한줄도 맘놓고 못먹을판

고보현,박홍주 기자
고보현,박홍주 기자
입력 : 
2021-10-31 17:48:15
수정 : 
2021-10-31 23: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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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 해친다

폭염일수 길었던 지난여름
김밥집發 식중독 환자 속출
모기 개체수도 30% 급등

온열질환자 年 4000명 넘어
노인·만성질환자는 더 취약

美 CDC는 위험집단 분류해
차양막 지원 등 구체적 대응
"우리도 중장기 대책 세워야"
◆ 대한민국 기후위기 보고서 /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 ③ ◆

사진설명
올해 여름 유난히 긴 폭염과 이례적인 가을 장마가 겹치면서 대규모 식중독 사태가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 7월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김밥 매장 두 곳에서 무려 276명이 식중독에 걸려 이 중 40여 명이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곧이어 경기 고양시 김밥집에서도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까지 발생해 전국이 식중독 공포에 떨었다.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 이들 지점에서 채취한 검체에서 살모넬라균이 검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한 달 동안 전국에서 집단 식중독 31건과 환자 1325명이 발생했다. 초여름인 7월 이같이 높은 수치가 보고된 것은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2년 이래 처음이다. 환경부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2090년대 식중독 발생 건수는 2002~2012년에 비해 42% 높아질 것"이라며 "설사 질환 환자 수도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식중독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는 노로바이러스, 병원성 대장균, 살모넬라, 캠필로박터, 장염비브리오 등이 꼽힌다.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월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경우 살모넬라, 장염비브리오로 인한 식중독 발생 건수가 각각 47.8%, 19.2% 급증한다. 진드기와 모기 관련 감염병인 쓰쓰가무시증과 말라리아도 기온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기는 일평균 기온이 1도 높아지면 성체 개체 수가 30% 가까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높은 기온과 습도가 지속되고 폭우, 홍수가 늘어나면서 식품을 매개로 한 감염병도 큰 폭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후변화가 시민 건강까지 위협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특히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등 사회·경제적 구조가 바뀌면서 취약계층을 위한 추가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식중독뿐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높아지자 온열질환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폭염이 최고치에 다다랐던 2018년 여름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전국은 '최악의 폭염'으로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온도를 기록했다. 하루 최저 기온이 30도 안팎에 머무르는가 하면 열사병, 탈진 증상을 보이는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 이때 발생한 온열질환자와 사망자는 각각 4526명, 48명으로 과거 기록을 갈아치웠다. 최고 기온이 33도를 넘기는 폭염 일수도 평년 대비 최소 4배에 달하는 31.4일로 관측됐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폭염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무려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1인당 진료비와 사망자의 통계적 생명 가치를 토대로 산출해낸 결과다. 보고서는 또 폭염 현상이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총 3454억7640만원 규모의 피해를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폭염특보가 발령되면 온도, 습도가 상승해 야외 노동자의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고온 노출에 따른 사망 위험을 조사한 결과 기온이 1도씩 증가할 때마다 사망 위험이 5% 증가한다고 밝혔다. 연령별로는 75세 이상의 경우 기온이 1도 높아질 때 사망 위험이 7% 늘어나 고령층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이 강하고 길어질수록 인명피해는 늘어난다. 환경부는 지난해 7월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서 "특히 여성과 65세 이상 노인, 저학력 인구집단, 만성질환자가 폭염 위험에 더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2040년대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곳은 대구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후변화는 신장질환과 치매 등 만성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세계 각국 정부가 일찌감치 폭염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한 이유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영유아, 65세 이상 고령자, 저소득층, 야외 근로자 등을 폭염 스트레스 및 사망 위험이 큰 집단으로 분류하고 온열질환 관련 유의사항과 대처법을 제공하고 있다. 환경보호국, 국립산업안전보건국 등도 폭염 데이터를 분석하고 피해 예방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뉴욕시의 '쿨 지역 전략'이 대표적으로, 당국은 인근 지역 온도를 낮추기 위해 녹지와 차양막을 확대하는 등 인프라스트럭처 개선에 나섰다. 1인 가구와 취약계층의 안전을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나 자원봉사자를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시행 중이다.

영국은 기후변화 대응을 법률로 의무화하고 있다. 2008년 제정된 기후변화법에 따라 영국 정부는 5년마다 '기후변화 위험 평가'를 시행하고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또 공중보건청을 신설해 지자체와 협력해 폭염 대응에 나서고 있다. 독일은 2019년부터 취약계층 거주지 위주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무더위, 폭우에 대비한 녹지 확충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 도쿄는 '폭염대책추진회의'를 설치해 무더위 대피시설 설치 사업을 개시했다.

한편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시간) 세계 인구의 누적 폭염 노출량이 30여 년간 3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2016년 한 해 동안 세계 전체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17억명이 치명적인 폭염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고보현 기자 / 박홍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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