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선수 40% “신체폭력 당한 뒤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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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07. 오후 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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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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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초·중·고 학생 선수 인권실태’ 발표
초·중·고 학년 올라갈수록 ‘폭력 경험’ 많아져
불법촬영과 성폭력도 수십 건 드러나
학생 선수들이 사용하는 합숙소.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1.

“하루에 30대 정도 맞았어요, 많이 맞으면 40대…. 안 맞는 날은 없고 매일 매일 맞았어요. 창고 들어가서 손으로 등이든 얼굴이든 그냥 막.”(초등학교, 남성, 배구)

#2.

“코치님에게 맞는 이유는 제대로 하지 않아서 맞는 것이기 때문에 맞는 건 상관없어요.”(초등학교, 여성, 태권도)

#3.

“도복 매고 준비 상태로 가는데 (감독님이) 애들 ○○만지고 딱밤으로 때리고….” (중학교, 남성, 유도)

#4.

“저희는 도복 훈련을 하면 타이즈만 입고 도복을 입기 때문에 풀어 헤치면 바로 보인단 말이에요. 그러면 와서 남자들이 한 번씩 하자고 해요. 운동에 집중해야 하는데 여기(가슴)를 보고 하는 거예요. 후배들이 운동 끝나고 ‘누나 비(B)컵이에요?’ 이런 식으로 묻더라고요.” (고등학교, 여성, 유도)

초·중·고 학생 선수들이 폭언과 욕설 등 언어폭력뿐만 아니라 신체폭력과 성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7일 공개한 ‘초중고 학생 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와 스포츠 (성)폭력 판례 분석 결과’를 보면, 초·중·고 학생 선수 5만7557명 가운데 9035명(15.7%)이 언어폭력을, 8440명(14.7%)이 신체폭력을, 2212명(3.8%)이 성폭력을 각각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학생 선수가 있는 전국 5274개교 초·중·고 선수 6만321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으며, 5만7557명(91.1%)이 응답했다. 인권위는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개방형 질문을 통해 얻은 2313명의 자유 의견과 29명 학생 선수에 대한 심층인터뷰 조사 결과도 담았다.

폭력은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 선수부터 시작됐다. 인권위 조사 결과, 초등학생 선수들은 주로 3~4학년 때 운동을 시작하며, 71.2%(1만2829명)가 ‘내가 좋아서’ 운동을 시작했다고 응답했다. 내 의지로 즐겁게 운동을 시작했지만 10명 가운데 2명이 폭언과 욕설, 협박 등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초등학생 선수 1만8007명 가운데 언어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3423명(19%)으로 언어폭력 경험자의 대부분인 69.0%는 가해자로 코치나 감독 등 지도자를 지목했다. 초등학생에게 원치 않는 각종 심부름이나 빨래, 청소를 시키는 사례도 779명(4.3%)으로 나타났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초등학생은 2320명(12.9%)으로, 교육부에서 실시한 ‘2019년 제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일반학생의 신체폭력 경험비율인 9.2%보다 약 1.4배 높았다. 신체폭력의 주요 가해자는 지도자(75.5%), 선배 선수(15.5%)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충격적인 건 초등학생 선수들이 폭력 피해를 내면화하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초등학생 선수들에게 신체폭력을 경험한 뒤 느끼는 감정을 묻는 말에서 898명(38.7%)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함”이라고 답했다. 인권위는 “일상화된 폭력 문화 속에서 초등학생 시절부터 이미 폭력을 훈련이나 실력 향상을 위한 필요악으로 인식(폭력의 내면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러한 폭력의 내면화는 운동집단 내 폭력 문화가 지속, 재생산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폭력은 학급이 올라갈수록 심해졌다. 신체폭력을 경험한 중학생 선수는 3288명(15.0%)으로, 일반 중학생 학교폭력(6.7%)보다 2.2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가해자로 지도자를 지목했던 초등학생 선수들과 달리 중학생 선수들의 주요 가해자는 선배 선수나 또래 선수가 50.5%로 가장 높았고 지도자가 43.8%로 뒤를 이었다. 중학생 양궁선수 ㄱ군은 인권위와의 심층 인터뷰에서 “선배들은 주로 숙소에서, 심할 때는 그 충전기선이랑 뭐 그런 거로 감아서 팔이나 가슴이나 때리고 티가 나면 뭐 위에 긴 팔 입으라고 한다”고 답했다. 피해자의 대부분인 2600명(78.6%)은 소극적으로 대처했는데, ‘피해 시 도움 요청 결과 행정 및 사법체계 도움을 받았다’는 비율은 중학생 선수 중 전체 14명(7.1%)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여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중학생 선수들은 불쾌한 신체접촉과 몰래 촬영에도 시달렸다. 중학생 선수들이 겪은 성폭력 피해는 ‘누군가 자신의 가슴이나 엉덩이, 성기 등을 강제로 만지라고 강요’ 42건, ‘누군가 나의 가슴이나 엉덩이, 성기 등을 강제로 만졌음’ 131건, ‘누군가 내게 강제로 키스나 포옹, 애무하였음’ 45건, ‘누군가 나의 신체 부위를 몰래 또는 강제로 촬영하였음’ 76건, 성관계 요구 9건, 강간 5건 등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가해자는 주로 동성의 선배나 또래였으며 장소는 훈련장에서 숙소로 변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신체폭력과 마찬가지로 피해를 본 중학생 선수 가운데 560명(52.3%)이 소극적으로 대처했으며, 도움을 요청한 경우에도 7명(7.1%)만 가해자 징계 및 처벌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등학생 선수 가운데 신체폭력 경험자는 2832명(16.1%)으로 일반학생보다 약 2.6배 높게 나타났다. 성폭력 피해에 도움을 요청한 9명(14.8%)만 징계 및 처벌을 받았다. 고등학생 태권도 선수 ㄴ양은 “중학교 2학년 때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고1 때 도장 사범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다른 도장으로 이전하고, 지금은 아무런 문제 없이 운동하고 있다. 만약 사건이 일어났으면 그 도장은 다시 운영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답했다.

인권위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서 학생 선수들이 각종 폭력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공적인 피해구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성)폭력으로부터의 보호체계 정교화 △상시 합숙훈련 및 합숙소 폐지 △과잉훈련 예방 조치 마련 △체육특기자 제도 재검토 △학생 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정례화 검토 등 다양한 개선책을 다각도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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