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해안가는 언제까지 지도에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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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28. 오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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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이라영의 비평
한반도의 기후위기

기후 탓 폭우·산불 지구적 현상
‘떠오르는 바다’ 예언도 현실로
더 해리슨스의 작품 <바다는 정중하게 떠오를 거다: 나는 당신을 돕고 당신은 나를 도울 거다(예언)>. 부산현대미술관 온라인전시관 갈무리


18일 새벽 강릉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순식간에 강릉역이 침수되고 출근길은 난리가 났다. 그리고 ‘강릉 물난리로 헌화로는 전면 통제되었다’는 뉴스를 접한다. 해안가 도로인 헌화로에 물이 찼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의 날씨가 아니라 시대의 기후다.

바다가 떠오른다


작년에는 대전, 부산, 구례 등에서 집중호우로 ‘물난리’가 났었다. 최근에만 벨기에와 독일 등 유럽에서 폭우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독일에서는 무려 150여명이 사망했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심각한 폭우가 발생했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산불이 멈출 줄 모른다. 극단적으로 습하거나 극단적으로 건조하다.

<바다는 정중하게 떠오를 거다: 나는 당신을 돕고 당신은 나를 도울 거다(예언)>. 1960년대 생태예술운동에 참여한 작가 더 해리슨스의 1979년 작품 제목이다. 현재 부산현대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얼핏 보기에는 세계지도처럼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각 나라의 모양이 조금씩 변형되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활동하던 그는 기후위기로 해수면이 상승하여 해안가 도시가 사라진 미래의 모습을 지도로 ‘예언’했다.

여기 또 다른 예언. 김기창의 2021년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에는 “전세계 136개의 해안 도시가 범람했고, 40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사회가 등장한다. 예술가들의 미래에 대한 과도한 상상이 아니다. 실제로 해수면은 세계 평균 연간 2㎜씩 상승 중이다. 그렇기에 기후변화의 영향은 해안가에서 훨씬 뚜렷하게 나타난다. 와인 생산지로 유명한 프랑스의 보르도, 백년전쟁 당시 ‘칼레의 시민’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북부의 칼레처럼 강 하구와 연결된 일부 해안 도시는 실제로 2100년이면 지도에서 사라질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가 지구의 상승하는 온도를 멈추지 못한다면 말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바다도 떠오른다. ‘한국 기후 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한국의 기온이 올라가는 속도는 세계 평균의 두배가 넘는다. 마찬가지로 해수면 상승도 세계 평균을 웃돈다. 한국의 평균 해수면은 해마다 2.97㎜씩 높아졌다. 지난 30년간 거의 9㎝ 상승했다. 특히 동해안의 해수면 상승이 남해와 서해보다 더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 10년간 동해안은 해마다 평균 4.86㎜ 상승했다. 위기는 다가올 미래가 아니다. 이미 우리가 그 위기 안에 있다. 기후위기는 정치위기에 의해 가속화된다.

유엔이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보고서를 낸 지난 9일 미국 플로리다주 서니아일스 해안가 건물 앞에 거센 파도가 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헬로포토 다운받겠음


정부·정치권, 무지하거나 소극적

생존을 위해 ‘지구의 법’ 따라야

기후문해력이 없는 권력


용기 내~ 용기! 브레이브걸스의 목소리로 공익광고가 울려 퍼진다. “지구를 위한 착한 용기”는 무엇인가.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음식 포장할 때 소비자들이 용기(容器)를 준비하는 용기(勇氣)를 내라는 캠페인이다. 음식 포장과 배달로 인한 쓰레기 증가는 감염병 대유행 이후로 훨씬 심각해졌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쓰레기가 분해될 때 메탄가스가 발생하고, 이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메탄가스 중에서 화석연료와 가축 사육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이리저리 노력하긴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개인적’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정부는 에너지 전환에 소극적이다. 또한 부동산 공급이라는 목적으로 재개발이 빈번하여 어마어마한 건설폐기물이 쏟아진다. 실제 생활쓰레기는 한국의 경우 전체 쓰레기의 12%도 되지 않는다. 약 85%가 산업폐기물이며 그중 절반 이상은 건설폐기물이다. 다시 말해 개개인이 별짓을 다 해도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개인의 용기를 독려하는 캠페인에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이유다. 게다가 이 모든 노력들에 눈에 띄게 앞장서는 이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이 과연 우연일까. 청결과 절약, 돌봄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성역할이었기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상의 실천에서도 은근히 여성의 책임이 커진다. 살림을 도맡아 하는 여성들은 더 노력하면서 더 죄책감을 느낀다.

반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정치인들이 가장 무관심하다. 예를 들어 ‘탄소중심’이 적힌 마스크를 천진하게 쓰고 다니는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의 행동은 단순 실수가 아니다. 윤석열은 시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다. 왜냐면 그가 배울 필요 없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여당은 어떠한가. 더불어민주당 대표 송영길은 “지금보다 1.5도 낮추지 못하면 파국”이라는 발언도 했다. 평소에 관심이 없다가 어설프게 벼락치기 공부를 하면 이런 일이 벌어진다. 입에 붙지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후문해력이 없는 이들이 권력을 쥐고 그들에게 유리한 언어들을 만든다. 이명박 정부에서의 ‘녹색성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그린뉴딜’로 변했다. 녹색 혹은 그린은 개인들이 실천하고 성장과 뉴딜은 기업이 담당하여 이윤을 얻도록 한다. 비행기 안 타려고 노력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건 말건 정치인들은 여전히 공항 건립을 유권자들에게 미끼로 던진다. 탄소배출만이 아니라, 무분별한 공항 건설로 많은 국내 공항이 적자 상태임에도 여전히 개발과 성장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정치를 한다. 참고로 프랑스에서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고속열차인 테제베(TGV)로 2시간3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국내 지역은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내놓은 탄소중립 시나리오 중에 1안과 2안은 오히려 ‘탄소중심’을 실천할 모양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2030년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10대 경제대국 중에서 1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리학자이며 환경운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인간이 그 무엇보다 두개의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지구의 법이고 다른 하나는 인권이다. 바다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떠오른다. 어느 법을 따를 것인가. 지구의 법인가 자본의 법인가. 지금은 집중호우로 통제되는 헌화로가 언젠가는 우리의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지금 이대로 간다면.

예술사회학자



<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2020) <타락한 저항>(2019) 등의 저자. 사회의 구석구석을 비평합니다. 아름다우면서도 정확한 비평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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