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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배달비 6000원, 남는 게 없다” 폐업률 78%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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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9호 02면

장사 접은 아빠의 한숨, 알바 잃은 자식의 눈물, 살까 말까 집었다 놓는 엄마의 망설임…. 이렇게 창업, 폐업, 최저임금, 물가라는 사회상이 고스란히 버무려있는 ‘만만한’ 먹을거리가 있다. 백숙이나 삼계탕, 혹은 치킨이나 통닭. 이런 ‘요리 완료형’ 이름을 가진 닭고기다.

서울 종로구 무악동의 '진미통닭'은 2021년 8월 현재 개업 33년째인 '동네 치킨집'이다. 남편 박상우씨가 안 나온 지난 8월 11일, 아내가 7개 테이블의 가게 일을 도맡아 했다. 김홍준 기자

서울 종로구 무악동의 '진미통닭'은 2021년 8월 현재 개업 33년째인 '동네 치킨집'이다. 남편 박상우씨가 안 나온 지난 8월 11일, 아내가 7개 테이블의 가게 일을 도맡아 했다. 김홍준 기자

여름은 이 닭고기가 가장 많이 팔리는 계절.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7, 8월 중 닭은 2억 마리 넘게 도축된다. 복날 효과 때문이다. 지난 10일은 말복. 닭의 성찬은 정점을 넘었다.

경쟁 심해 개업도 폐업도 가장 많아 #전국 치킨집 8만5000개로 ‘쇠퇴기’ #닭 값 뛰고 재료비·임금 올라 3중고 #“장사 계속해도 손해, 접어도 손해 #맥주 값이라도 좀 올리고 싶지만…”

하지만, 여전히 닭은 강력하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19년 1인당 닭고기 소비량은 15.76㎏. 10마리 분량이다. 13㎏ 안팎인 소고기를 뛰어넘는다. 배달음식 넘버 3가 치킨이다. 배달 대행업체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는 지난해 배달음식 1위가 버거, 2위 한식, 3위 치킨이라고 밝혔다. 치킨은 수년간 지키던 2위에서 3위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한 셈. 1인1닭 혹은 1일1닭의 시대, 사회상이 배어있는 치킨의 속살을 뜯어봤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 치킨집 창업비용은 5800만원대
“여기 줄이 길게 서 있었는데, 오늘은 없네요.”
지난 9일 경기도 부천시 부천소방서 근처의 한 치킨집. 부천에서 맛집이라는 이곳을 찾은 한모(51)씨는 “희한하네, 예전보다 손님이 적네”라고 말했다. 치킨집 주인은 “코로나도 있지만, 경쟁이 심하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전국 치킨집 수는 8만5320개. 이 중 1648곳(1.9%)이 부천에 있다. 전국 지자체 중 1위다. 1202곳으로 2위인 대전시 서구와 446곳이나 차이가 난다. 부천은 치킨집 창업 1위이자 폐업 1위인 도시이기도 하다. 부천 소방서 앞에서 스마트폰 지도앱을 통해 ‘치킨집’을 검색해 본 결과, 반경 1㎞ 내 140여 곳이 화면에 표시됐다. 부천은 지난 2016년 구청을 없애고 시-동 행정체계로 개편했다. 인구 대비 치킨집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전남 여수시(2019년 기준 업체 1개당 인구수 약 275명)다.

경기도 부천 소방서 앞에서 지난 8월 10일 스마트폰 지도 앱을 통해 '치킨집'을 검색하자 나타난 화면. 부천시는 지자체 중 치킨집 개폐업 1위이자, 업체 수 1위인 곳이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부천 소방서 앞에서 지난 8월 10일 스마트폰 지도 앱을 통해 '치킨집'을 검색하자 나타난 화면. 부천시는 지자체 중 치킨집 개폐업 1위이자, 업체 수 1위인 곳이다. 김홍준 기자

지난 20년간 치킨집 창업이 가장 많았던 해는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무려 1만3707개였다. 하지만 2005년부터 폐업과 창업이 비슷한 수를 보이며 포화상태를 맞이했다. 2013년에는 폐업이 8143건으로 개업(7880건) 수를 앞서기 시작했다. 치킨집은 이후 쇠퇴기라는 분석이다.

이영주 국토연구원 국토시뮬레이션센터장은 “치킨집 창업비용은 5800만 원대로, 1억원을 훌쩍 넘는 커피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의 절반 수준이라 많은 퇴직자가 도전하는 업종”이라며 “하지만 업소당 연매출액은 1억4949만원으로, 커피점·주점 등 16개 프랜차이즈 업종 중 하위권”이라고 밝혔다.

퇴직 뒤 서울 은평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김모(57)씨는 “해도 손해, 안 해도 손해인 게 치킨집”이라며 “그래도 장사를 해야 물건이 돌아가고, 사람도 살아가는 동기를 마련한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그나마 5년 넘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사람들. 국토연구원은 지난 20년간 치킨집 폐업률은 78.2%라고 밝혔다. 장사 접은 아빠의 한숨이다.

# 치킨 맛보다 오토바이 속도에 달려 
“치킨 시장은 이제 배달앱이 꽉 쥐고 있죠."
천모(50)씨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꽤 큰 규모로 프랜차이즈 치킨집을 꾸렸다. 그는 “치킨집은 맛보다 오토바이 속도에 성패가 달렸다는 말들을 한다"고 덧붙였다.

치킨집 건너편에 치킨집, 모퉁이를 돌면 또 치킨집. 마침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지난 8월 13일 서울의 한 거리 풍경이다. 김홍준 기자

치킨집 건너편에 치킨집, 모퉁이를 돌면 또 치킨집. 마침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있다. 지난 8월 13일 서울의 한 거리 풍경이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고양시의 치킨집 사장 이모(42)씨는 “본사에서 배달앱을 이용하라고 권유한다”며 “일단 매출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하더라”고 전했다. 치킨집이 ‘메이저’ 배달앱 업체에 내는 배달수수료는 보통 건당 6000원. 1만4000원짜리 치킨을 팔면 8000원이 남는 것이다. 이씨는 “이마저 재료비에 인건비를 빼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강화 이후 수도권 주요 상권의 소상공인 매출이 뚝 떨어졌다. 오후 6시 이후 매출이 코로나 전보다 반토막 났다. 지난달 12일부터 시작된 거리두기 4단계는 오늘(14일)이 34일째다. 하지만 치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배달로 성업 중이다. 교촌치킨·BHC·BBQ 등 빅3의 지난해 매출이 25%나 늘었다. 서울 은평구의 김모 사장은 “홀 장사를 하려는 생각도 했지만 배달 전문으로 돌린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김씨는 “언뜻 보면 치킨이 더 잘 팔리는 것 같아도 현장에서는 체감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2018년 시간당 7530원→2022년 9160원)으로 인건비가 늘었다. 김씨는 “어떻게 말할지 고민하던 참인데, 주방 아주머니가 스스로 관둬서 불편한 상황을 면했다”며 씁쓸한 미소를 보냈다. 그는 대신 아내와 단둘이 장사를 한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의 ‘우리통닭’ 백미현(59)씨도 직원을 두지 않고 있다. 그는 “전에 함께 일했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주휴수당도 챙겨줘야 해서…”라고 말했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의 동네 치킨집 '우리통닭' 은 후라이드치킨에 간을 약하게 한 튀김옷을 입히고 닭근위 튀김을 얹어준다. 배달은 하지 않는다. 말복인 지난 8월 10일 점주가 밀려드는 주문에 바삐 치킨을 튀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의 동네 치킨집 '우리통닭' 은 후라이드치킨에 간을 약하게 한 튀김옷을 입히고 닭근위 튀김을 얹어준다. 배달은 하지 않는다. 말복인 지난 8월 10일 점주가 밀려드는 주문에 바삐 치킨을 튀기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11일 통계청은 7월 고용동향을 발표했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127만4000명으로 한 달 새 7만1000명 감소했다. 1990년 7월(119만5000명) 이후 7월 기준으로 가장 적은 규모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2018년 12월 이후 역대 최장 기간인 32개월 연속 줄었다.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8만7000명 늘었다.

유모(22·경기도 부천)씨는 최근 치킨집 알바 자리를 잃었다. 그는 “사장님이 14시간씩 쪼개기 알바를 시키더니, 결국엔 미안하다며 내보내더라”고 밝혔다. 주휴 수당은 주 15시간 이상 근무할 때 받게 돼 있다. 일자리 잃은 청년의 눈물이다.

# 닭 삼계탕 한 그릇 1만8000원
“복날이라 생닭 값이 꽤 올라 살까 말까 한참 망설였어요.”
직장인 김학진(41·서울 강북구)씨는 아내와 마트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밖에서 삼계탕을 사먹자니 1만8000원이나 나가고, 집에서 해먹는 것도 만만치 않더라”고 밝혔다.

실제 한국육계협회 자료에 따르면 12일 현재 냉장 닭고기(5~6호) 공장도 가격은 kg당 4600원. 1년 전(3433원)보다 34% 뛰었다. 삼계탕에 쓰는 삼계(65호)도 kg당 2780원에서 3480원으로 25% 올랐다. 계란값도 고공행진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특란(30개) 소비자가격이 11일 현재 7077원으로 1년 전(5011원)보다 41% 뛰었다.

올해 초 조류인플루엔자(AI)의 파고가 잠잠해지면서 닭과 계란값이 안정세를 되찾을 것으로 점쳐졌지만, 지난달 폭염에 따른 닭 폐사가 22만 마리에 달했다. 여기에 식용유, 밀가루 값도 올랐다. 물가 인상 압박이 치킨집을 1년 내내 두들기고 있는 셈이다.

치킨집은 많이 생기고, 많이 사라진다. 국토연구원은 지난 20년간 치킨집 폐업률이 78.2%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치킨집. 김홍준 기자

치킨집은 많이 생기고, 많이 사라진다. 국토연구원은 지난 20년간 치킨집 폐업률이 78.2%에 달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치킨집. 김홍준 기자

“생맥주나 다른 음식값을 살짝 올려 원가를 벌충하고 싶지만….” 일부 치킨집 사장들은 이런 속내를 내비쳤다. 서울 종로구 독립문역 앞 ‘진미통닭’을 꾸리는 박상우(74)씨는 “사실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반 마리 6000원에 생맥주 3000원을 유지하면서 단골을 붙잡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밝혔다.

살충제 달걀 논란이 전국으로 일파만파 번지던 2017년 8월, 닭을 가득실은 특럭이 경부고속도로의 한 휴게소에서 잠시 주차돼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살충제 달걀 논란이 전국으로 일파만파 번지던 2017년 8월, 닭을 가득실은 특럭이 경부고속도로의 한 휴게소에서 잠시 주차돼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닭값을 올린 AI와 폭염은 동물 복지 논란을 수면 위로 올리기도 했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미국에서 비롯된 닭 밀집 사육은 닭고기 생산을 혁신적으로 이뤄냈지만, 인간의 욕망을 위해 동물을 학대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고 말했다. 현재 산란계 사육 면적은 마리당 0.075㎡. A4 용지(0.0625㎡)보다 조금 넓다. 2017년 살충제 계란과 AI로 홍역을 치르고서야 그나마 0.05㎡에서 넓힌 것이다.

동물복지문제 연구소 ‘어웨어’의 이형주 소장은 "닭과 같은 공장식 축산물은 이미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사람의 위와 장으로 들어온다”며 “넓어졌다는 0.075㎡도 말 못하는 닭에게는 비좁은 감옥”이라고 설명했다. 동물 복지 확대는 닭값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치킨집의 숙제는 쌓이고 쌓이는 셈이다.

오늘도 한입 물어보는 닭다리. 감칠맛 뒤에는 이처럼 쓰디쓰고 아픈 맛이 배어 있다.

중국서 알아준 한국 닭 … 일제강점기 때 양계 본격화

명나라 의사 이시진(1518~1593)이 『본초강목』에서 한국의 닭 맛을 극찬했다. ‘조선의 장미계(長尾鷄)는 3~4척에 이르고 여러 닭 가운데서도 맛이 가장 좋고 기름지다.’ 닭찜은 조선에서도 보양식으로 꼽혔다. 화가 조영석(1686~1761)이 음력 6월 15일, 그러니까 초복 즈음에 시를 짓는다. ‘북쪽 마을에서 개 삶는 연기, 동쪽 집에서 닭 잡는 소리.’

우리 식탁에 닭고기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게 100여 년 전이다. 조선 시대에는 닭을 고기로 소비하기보다 계란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길렀다. 그러다가 1920년대 조선총독부가 양계(養鷄)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1925년 8월 16일 자 동아일보는 양계를 유망한 사업으로 적시하며, ‘수요지는 일본’이라고 적고 있다. 동아일보는 같은 해 10월 4일 자에 ‘총독부 축산기사의 말을 들으면…닭은 1000만 마리로 근래에 이르러 매우 많이 사용하는 모양인데 이 중에 약 1만 마리는 다른 나라로 이출…’이라고 썼다. 한 해 1000만 마리를 소비했다는 얘기다.

닭고기 대량 사육은 2차 세계대전 때 미군 식량을 늘리기 위해 시작됐다.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닭장에서 다쳐도 거뜬할 항생제, 불 끄고 비육해도 영양 파괴를 막아줄 합성 비타민D, 닭 몸집을 단기간에 키워줄 사료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렸다”고 말했다.

춘천닭갈비는 최초의 닭고기 브랜드다. 사진은 강원도 춘천시 명동의 우미 닭갈비. 백종현 기자

춘천닭갈비는 최초의 닭고기 브랜드다. 사진은 강원도 춘천시 명동의 우미 닭갈비. 백종현 기자

우리나라 닭고기 브랜드의 시작은 춘천닭갈비였다. 춘천의 먹을거리는 원래 막국수였다. 1960년대 중산층이 늘고 교통망이 확충됐다. 여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교외로 나들이 가는 인구가 많아졌다. 비교적 싼 값에 손님을 끌려고 만든 게 닭갈비였다. 정혜경 교수의 「고기의 인문학」나온 내용이다.

다른 의견도 있다. 이미 춘천닭갈비가 브랜드화 하기 이전에 '영양센타'라는 치킨 브랜드가 서울 충무로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단다.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가 행여 잃어버릴라, 가족을 위해 손에 꼭 쥐고 간 치킨이 든 종이 봉투. 이런 기억을 남긴 영양센타가 치킨 브랜드의 시초라는 말이다. 곽모, 정모씨 등 70~80대의 설명이다.

삼계탕이란 이름도 60년대에 생겼다. 주영하 한국중앙학연구원 교수는 “일제강점기까지 백숙이란 이름으로 판매하던 가게들이 50년대에 계삼탕으로 이름을 갈더니, 60년대 들어 삼(蔘)을 앞에 내세우는 전략을 택해 삼계탕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안동찜닭은 ‘예전부터 전해져 왔다’는 설과 ‘1980년대 안동시장 상인들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다.

치킨은 한식이 아니다. 그렇다면 양념치킨, 간장치킨은 한식일까. 정혜경 교수는 “뉴욕 한복판에서도 인기 있는 양념·간장치킨은, 인류 보편의 음식인 치킨에 우리 고유의 양념을 입힌 한식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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