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기사 상세

국제

`한국인 보다 가난한 일본인?` 그들 월급이 20년 넘게 그대로인 이유

신윤재 기자
입력 : 
2021-08-07 06:01:01
수정 : 
2021-09-25 09:04:03

글자크기 설정

[한중일 톺아보기-65]
※ '한중일 톺아보기'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이슈를 살펴보는 주간연재코너입니다.
사진설명
일본의 임금정체 문제는 오래된 화두지만, 근래들어 일본 언론에서 보도하는 빈도가 많아졌다.
"20년 넘도록 월급이 그대로다." 근래 일본에서 이 같은 볼멘소리가 자주 터져 나오는 모양이다. 임금은 경기 변화에 따라 오르기도 내리기도 하기 마련이라지만 이렇게 장기간 제자리인 일본의 상황은 분명 특이하다. 일본 언론들은 평균 임금이 지속 상승한 다른 선진국 들과 비교하며 자국민들이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일본은 자타공인 선진국 그룹인 G7의 일원이지만 평균 임금 면에서는 이탈리아와 뒤에서 1·2위를 다투고 있다.

사진설명
PPP를 기준으로 한 2020년 일본의 평균 임금은 한국에 비해 3445달러(약400만원)가 적다. 월수입 기준으로 33만원 정도 적은 셈이다. [그래픽=조보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는 평균 임금 자료는 구매력 평가(PPP·Purchasing Power Parity)를 바탕으로 한다. 이를 기준으로 할때 2020년 일본의 연평균 임금은 3만8514달러 였다. 20년 전(3만8364달러)에 비해 고작 150달러 오른 셈이다. 한때 경제 규모와 1인당 소득 면에서 경합을 벌이기도 했던 미국(6만9391달러)과 44%나 차이가 나고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다른 선진국들과도 차이가 뚜렷하다. 특히 일본의 평균 임금은 5년 전 이미 한국에 역전된 데다 그 차이도 벌어져 온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년간 한국 평균 임금이 43.5% 증가한 데 반해 일본의 인상률은 0.4%로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던 결과다. 서방 선진국도 아닌 한국보다 평균 임금이 낮아졌다는 소식이 충격적이었는지 이와 관련된 일본 언론의 보도는 최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일본 경제기획청 출신 전직 관료가 쓴 "왜 일본은 한국보다 가난해졌는가" 라는 도발적 제목의 칼럼이 일본 네티즌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낳기도 했다.

평균 급여 1997년 정점 찍고 감소…아베노믹스도 효과 없어

사진설명
일본의 급여소득자 1인당 평균 급여는 1997년이 피크였다. 아베노믹스 이후 명목 임금이 회복세를 보였지만 실질임금 상승률은 2년을 빼고는 마이너스 였다. [그래픽=조보라]
과거 수십 년간 사람들의 생활 변화를 파악하는 데는 급여 추이를 살펴보는 게 유용하다. 일본 국세청이 매년 발표하는 '민간급여 실태 통계'에 따르면 1990년 일본 급여 소득자의 평균 급여는 425만엔이었다. 이것이 1997년(467만엔)까지는 완만한 증가 추세가 이어졌지만 1998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여기에는 1997년 정부 재정지출 감소, 3%에서 5%로의 소비세 인상, 소득세 환급 폐지라는 3가지 정책의 여파가 컸던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리먼 쇼크 사태 이듬해인 2009년 일본의 평균 급여는 406만엔으로 1997년 대비 13%나 급락했다. 당시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997년과 비교해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본의 급여 소득자들은 12년 전에 비해 13%만큼 가난해진 셈이었다. 이후 2010년대에 걸쳐 일본인들의 평균 급여는 회복세를 보인적도 있지만 그 정도가 미미했고, 아직까지도 1997년이 역대 최고치로 나타나고 있다.

사진설명
도쿄 올림픽에 앞서 사퇴했던 아베 총리. 일본내 아베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엇갈린다.
사실 일본에서 임금 저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점은 아베노믹스 등장 이후다. 그 이전 장기 경기 침체가 계속되던 기간에는 임금 저하 문제가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13년 이후 아베노믹스로 경기가 호전되면서 노동에 대한 초과 수요가 있는데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기현상이 나타나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높아진 고용률은 아베노믹스의 유산이자 성과로 거론된 것들 중 하나였다. 일본 정부는 아베노믹스 이후 경기가 살아나면서 고용 상황도 개선됐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일자리가 늘고 실업률은 떨어졌지만 실질 임금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이에 실상 일자리의 질이 떨어지는 비정규직만 늘렸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계속돼왔다. 일자리가 늘었다곤 하나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비율만 급증해 전체 평균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日언론 "한국에 뒤처진 이유는 고용 경직성 차이"

사진설명
일본의 대표적 IT 대기업 소프트뱅크는 일본형 고용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일 일본 경제지 주간 다이아몬드는 일본의 평균 임금이 정체를 거듭하다 한국보다 낮아진 이유로 고용 경직성 차이를 들었다. 과거에는 한국 기업들도 '종신 고용·연공서열·기업별 노조'를 특징으로 하는 소위 '일본형 고용'과 유사한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았지만, 1990년대를 거치며 바뀌었다는 것이다. 주간 다이아몬드는 한국의 경우 민주화가 진전되고 IMF 사태를 거치며 일본과 달리 기업별 노조가 산업별 노조 형태로 바뀌고 상대적으로 고용 유연화도 진전됐다고 주장했다. 과거 '일본형 고용'은 일본 경제가 고속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표준적 제도로 기능했다. 그러나 시대 변화에 따라 일본 기업들의 이 같은 관행은 현실과의 괴리가 뚜렷해진 지 오래다. 그러한 과정에서 '마도기와족'(窓際族) 같은 말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마도기와족은 가장 할 일 없는 직원들의 책상이 사무실 가장 끄트머리 창가에 배치되는 일본의 사무실 구조에서 나온 말이다. 기업으로서 해고는 못하고 이들도 재취업에 자신은 없어 연차로 쌓인 월급만 받아가는 모습은 일본형 고용의 맹점을 드러내주는 것이었다.

물론 일본도 외국계나 소프트뱅크, 라쿠텐과 같은 기업들처럼 연공서열과 종신 고용을 부정하는 기업이 느는 추세다. 그러나 종신 고용 붕괴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종업원 1000명 이상의 일본 대기업들, 특히 제조업 계열에서 일본형 고용 관행은 여전히 작동한다. 종신 고용의 보호를 받는 나이 많은 직원들과 정사원으로 입사하는 직원들이 비율상 줄어들었을 뿐이다. 일본의 장기 고용 관행은 직장인들의 이직률이 서구의 절반 이하인 점에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日 장기침체와 임금정체 원인, 생산성 하락과 비정규직의 증가...한국은 괜찮을까?

사진설명
1990년 20%이하였던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현재 40%에 근접한다. 이는 각종 제약으로 정규직 해고가 극히 어려운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래픽=조보라]
일부 경제학자들은 일본 경제의 기록적 장기 침체와 임금 정체의 원인을 생산성 하락과 노동 시장의 구조적 문제에서 찾기도 한다. 특히 1998년 이래 일본 급여 소득자의 1인당 평균 급여가 하락한 요인으로 정규직 감소와 이들을 대체한 급여가 낮은 비정규직의 증가를 지목해왔다. 미야모토 히로아키 도쿄도립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거품 붕괴 이후 종신 고용과 연공서열로 대표되는 일본형 고용 관행 유지는 비정규직 증가와 노동생산성 저하를 불러왔다. 일본 기업들은 종신 고용 유지에 따른 재정 부담에 놓이자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늘렸다. 기존의 정사원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 단합해 신규 정사원 대신 비정규직을 늘리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실제로 1990년에서 2020년까지 30년 동안 일본 기업의 정규직 비율은 18%포인트 감소한 데 반해, 비정규직 비율은 18%포인트 늘었다. 미야모토 교수는 정규직에 비해 교육 훈련 기회가 적은 비정규직의 급증은 다시 노동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두 가지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일본 기업들이 고용 유지를 우선하는 대신 임금을 억제한 결과, 대기업에서 중소기업 간 인재 이동도 별로 일어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노동 시장은 재편되지 않았고 생산성이 향상되지도 않았다. 생산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기업들이 임금을 올릴 유인은 더 적어졌다. 임금 정체로 소비가 늘지도, 국내 시장도 커지지 않아 기업들이 다시 임금 인상을 억제하는 악순환도 생겼다. 이에 임금 인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더 과감한 개혁을 통해 일본적 고용 관행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은 아직까진 일본과 같은 장기 침체 조짐이나 노동생산성의 갑작스러운 하락이 나타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최악의 청년 실업률에 가계부채 급증, 심각한 저출산까지 국내 유효 수요와 성장동력을 옥죄는 악재는 산적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가 일본경제처럼 되지 않을 거라 장담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선제적 개혁 조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하단 기자페이지 +구독을 누르시면 다음 기사를 빠르고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관련 뉴스 제보나 의견을 메일로 보내주시면 소중히 검토후 차후 꼭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신윤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