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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적분 못해도 공대 합격…지방대, 눈물겨운 `정원 채우기`

김제림,문광민 기자
김제림,문광민 기자
입력 : 
2021-07-25 17:25:34
수정 : 
2021-07-25 21: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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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정시 모집단위별 결과 살펴보니

지방 사립대 35% `전원 합격`
수학 8등급이 국립대 붙기도
학업 편차에 수업의 질 떨어져
"신입생에 수학·과학 과외까지"

지방대 갈수록 정원미달 위기
수시 늘리고 입학문턱 더 낮춰

교육부 "대학 정원감축 필요"
◆ 지방대 위기 가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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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의 한 사립대학은 최근 입학생들에게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 과학을 다시 가르치기 위해 한 사교육 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고등과목 강의 패키지를 받기로 했다. 입학정원을 채우기 급급해 점수나 수능 등급도 상관하지 않고 학생들을 뽑다 보니 학생들이 기초과목 수업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하소연이 교수들 사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과거 대학교 입학처장들의 주요 전공은 통계학과가 많았다. 많은 지원자들 가운데 학력 수준이 비슷해 점수 표준편차가 작도록 학생들을 뽑는 통계 테크닉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입학처장들의 주된 전공은 경영학과 마케팅이다. 학생들이 안 오다 보니 대학을 잘 홍보하고 '세일즈'하는 기술이 입학처의 최고 덕목이 되면서다.

2021학년도 대입 정시모집에서 학령인구 감소와 수시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으로 지방 소재 대학은 3분의 1가량이 '프리패스' 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에서 지원자 변별 기능을 상실한 지방 대학들은 신입생들의 학업 능력 저하에 따른 수업 파행이라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매일경제가 대입 정보 포털 '어디가'에 공개된 183개 4년제 대학별 2021학년도 정시모집 결과를 전수 분석해보니, 지방 대학 정시 모집단위 3644곳 중 1055곳(29%)이 경쟁률 1대1 미만이었거나, 충원합격 절차를 거치면서 지원자 모두에게 합격 통보가 이뤄졌다.

수도권 대학은 1708곳 중 48곳(2.8%)이, 서울은 1115곳 중 8곳(0.8%)이 '무경쟁' 전형이었다. 설립 구분별로 보면 지방 사립대학은 2021학년도 정시에서 2264개 모집단위 중 860곳(38%)이 결과적으로 프리패스 전형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지방 국공립대학은 1404개 모집단위 중 195곳(14%)에서 지원자 전원에게 합격을 통보했다. 2021학년도 대입에선 미충원에 따른 수시모집 이월 인원 규모가 3만7709명으로 전년도 대비 1만775명 늘었다. 고3 학생 수가 1년 새 6만3000여 명 줄어들고, 원서 접수 기회가 6회인 수시모집에서 수험생들의 상향 지원 경향이 짙어진 영향이 컸다. 정시모집 선발 인원이 늘면서 결국 지방 사립대학에선 프리패스 모집단위가 대거 발생했다. 문제는 이 같은 악순환이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방 대학들은 지원 기회가 3회로 제한된 정시모집에서 학생 모집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하고 수시모집 인원을 늘리고 있다. 현 고2가 치르는 2023학년도 대입에서 지방 대학들의 수시모집 인원은 18만7222명으로 2022학년도 대비 8669명 늘어난다. 2023학년도 대입을 치르는 고3 학생 수는 약 43만명으로, 올해보다 1만여 명 줄어든다. 2024학년도 대입 때는 고3 학생 수가 39만5000여 명으로 전망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충격이 또 한 차례 예상된다.

학생 모집이 지상과제가 된 지방 대학들은 입학전형의 문턱을 낮추는 등 자구책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현장에선 백약이 무효하다는 반응이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대학 모집정원은 그대로인데 수험생은 계속 줄고 있다. 자구책을 마련한들 시기적으로 많이 늦었다"고 말했다.

상당수 지방 대학 입시에서 지원자들의 학업 능력을 변별하는 기능은 정지된 상태다. 수능에서 수학 8등급을 받은 수험생이 충북대 수학과 정시모집 일반전형에 합격한 게 단적인 사례다. 신입생들의 학업 능력 하락과 재학생들 간 학업 능력 편차 문제는 지방 사립대학들에 이미 만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패스 전형의 확대는 수도권과 지방 간 대학의 서열을 더 고착시키고 있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입시연구소장은 "입시에서 대학은 '선발권이 있는 대학'과 '모집해야 하는 대학'으로 나뉜다"고 했다.

학령인구 감소가 불러온 지방대 입학생 학력 저하에 대해서는 해결 방안도 엇갈리고 있다.

대학 정원 미충원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5월 교육부는 '대학의 체계적 관리 및 혁신 지원 전략' 발표를 통해 대학 정원 감축을 시사했다. 정종철 교육부 차관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학령인구 급감 현상에 미리 대처하려면 지방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학까지도 고등교육 생태계 유지 관점에서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황홍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입학할 때 학력이 다소 저조하더라도 대학이 맞춤형 교육을 해주면 학업 성과가 나올 수 있다"며 "교수당 학생 수를 줄여 맞춤형 교육을 하기 위해선 정부의 충분한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제림 기자 /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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