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 전반에 행복한 삶(well-being) 못지않게 ‘좋은 죽음(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좋은 죽음이란 죽음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며,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주변을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구에서는 생애 말기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데 본인 의사를 반영하도록 배려한다. 한국에선 법적인 요건이 더 엄격하다. 치료해도 회복되지 않는 임종기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특수 연명 치료 4가지에 한해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삶을 잘 마무리하는 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들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필자는 미국 뉴저지주에 1년간 살면서 개인 임종기 돌봄 계획을 지역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돕고 있는지를 볼 기회가 있었다. 지역 공공 도서관에서 임종기 돌봄과 관련된 책을 소개하고 함께 논의하거나, 주기적으로 생애 말기 계획의 중요성을 알리는 ‘삶의 마지막: 계획이 중요하다(End of Life: Planning is Everything)’는 식의 강연을 열어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

이런 강연에는 의사뿐만 아니라 변호사, 사회복지사, 주정부 관련 부서 담당자, 미국 은퇴자협회(AARP) 지부 직원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나와 정보를 공유했다. 노인복지관(Senior resource center)에서는 5~6명 내외 소그룹을 짜 건강 계획 워크숍(Health Planning Workshop)을 열어 사회복지사가 생전 유언(living will), 대리인(Power of attorney for health care) 지정, DNR(심폐소생 거부) 서식 등에 대해 설명하고,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본인 이야기를 하고 궁금한 점을 질문할 수 있도록 하며,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것을 권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음 준비라고 하면 장례를 위한 준비를 주로 거론했다. 상조회에 가입하고, 수의를 준비하고, 장례 방식을 정하고, 묫자리를 봐두는 것들이다. 그러나 막상 죽음이 가까이 왔을 때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은지, 내가 의식이 없다면 누가 어떤 결정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는 쉽지 않다. 마치 죽기를 바란다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팬데믹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죽음과 질병이 피부에 와닿는 환경을 살고 있다. 한번쯤 삶과 죽음에 대한 자신의 평소 생각, 예컨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이며, 이를 위해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 또 가족들에게는 어떤 것들을 말해 놓아야 할지 등을 정리해보는 작업이 절실해진다. 갑자기 뜻하지 않게 세상을 떠난다면 남겨진 가족들도 당황하고 사태를 원만하게 추스를 정신적 여유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전돌봄계획(advanced care planning)’이란 돌봄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 예컨대 더 이상 치료가 어려우면 고통 완화 위주 치료 또는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싶다든지, 회복은 불가능하고 생명만 연장할 뿐인 치료는 받고 싶지 않다든지, 어떤 상황이 되면 요양 시설로 가고 싶다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 미리 생각해보고 임종기 돌봄을 계획해 놓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생의 말에 환자 본인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인 한계로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없게 될 때를 대비하여 앞으로 돌봄과 치료 방향을 미리 계획하는 과정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는 이런 생각을 미리 서류로 만드는 것이며, ‘연명의료계획서'는 임종 과정에서 의사와 논의로 본인 의사를 확인하거나 본인 의식이 없을 경우 법정대리인 동의를 거쳐 작성하는 것이다. 이는 공식적인 준비이며 가족들이나 가까운 지인, 주치의, 주 돌봄자 등 생애 말기를 함께할 사람들과 이러한 의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비공식적’ 준비도 포함된다.

사전돌봄계획이 일반인에게는 아직까지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개념이지만, 2016년 우리나라에서도 사전돌봄계획과 관련한 법이 통과됐다. 이른바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은 사전 계획으로 임종기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방지하며,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이 호스피스 서비스로 좀 더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이 법에서는 건강한 사람들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여 미리 임종기 연명 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선택에 관한 본인의 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공식적’ 문서 작성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준비는 임종에 대해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가족들이 당사자 대신 뭔가 결정해야 할 경우, 그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을 잘 알고 있으면 이러한 선호를 반영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가 미리 이뤄지면 가족들 부담을 줄여주고 혹시 모를 가족 간 의견 충돌을 방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삶을 잘 마무리하려면 어떤 것들을 생각해보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이렇게 무거운 주제의 대화를 가족과 함께, 혹은 나를 돌보는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미국 민간 단체에서 제안한 ‘다섯 개의 소원(Five wishes)’은 참고할 만한 도구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사전의료의향서 등 문서를 작성하는 데 필요한 질문 외에도 통증 관리, 선호하는 돌봄 방식, 선호하는 돌봄 장소,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대해주었으면 좋겠는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와 내가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는지, 나의 장례는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등 생애 말기부터 임종기까지의 많은 부분을 계획할 수 있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주변 사람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나 본인의 건강 변화, 부모 세대 간병 경험 등을 이야기하며 이러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도, 사회 전반에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를 꺼려 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면 이야기를 선뜻 꺼내기 힘들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내에 나와 있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Being Mortal: Medicine and what matters in the end)’이나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The Conversation: A Revolutionary Plan for End-of-Life Care)’이란 책을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하정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