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 인간의 삶을 묻다]문명의 발전이 낳은 공포 '판데믹' 인류의 치명적 위협

윤석만 2020. 1. 3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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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만의 인간혁명]감염의 사회학

판데믹 상황의 혼란과 갈등을 실감나게 그린 영화 '컨테이전'. 홍콩의 박쥐가 감염의 원인으로 나온다. [영화 컨테이전 캡처]

“눈이 붉게 충혈된 젊은이들이 심한 고열과 두통을 호소했다. 거리엔 하나둘씩 시체들이 쌓였고 겁에 질린 시민들은 신전으로 몰렸다.“
전염병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5세기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입니다. 그는 BC 431년 아테네를 엄습한 괴질(怪疾)로 아테네 병력의 3분의 1 이상 죽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면서 아테네 패망의 원인 중 하나로 전염병을 지목했죠. 페르시아전쟁의 승리로 번영을 구가했던 아테네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이 퍼지면서 전력이 약화됐고, 결국엔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패하면서 멸망합니다.

과거의 전염병 사례

이처럼 전염병은 국가의 흥망성쇠에까지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것도 전쟁이 아닌 전염병이었죠. 눈에 보이지 않는 조그만 세균과 바이러스가 수많은 목숨을 빼앗았고, 역사의 물고를 틀기도 했습니다. 이는 16세기 아메리카의 두 문명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1529년 스페인 군대의 침략으로 멸망한 아즈텍은 전쟁보다 천연두로 사망한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2000만 명에 달했던 아즈텍 인구는 1618년 160만 명으로 급감했죠. 1531년 168명에 불과한 프란시스코 피사로(1475-1541)의 군대가 잉카제국의 8만 군대를 무너뜨린 것도 천연두 때문이었습니다. 외부 세계와 단절돼 천연두 바이러스의 항체가 없던 것이 큰 원인이었죠.


인류에 가장 큰 위협은 바이러스

29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 인천교통공사 귤현차랑기지 전동차량에서 공사관계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처럼 전염병은 인류에게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위협 요인입니다. 2017년 세계안보정상회의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바이러스는 핵무기보다 쉽게 많은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며 “전쟁에 대비하듯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에 판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수천만 명의 생명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 달 전 발병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도 판데믹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짧은 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많은 시민이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했어도 전염병을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염병은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인류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문명의 발상인 농경생활이 전염병의 시초였기 때문입니다.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초기 인류는 당장 먹을 만큼만 사냥했습니다. 음식을 저장하지 않았고 잘 곳을 계속 옮겨 다녀 배설물에 오염될 가능성도 낮았죠. 그러나 가축과 함께 정주생활을 시작한 인간은 면역이 없는 항원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또 농경사회 집단의 규모는 세균과 바이러스가 증식하기에 좋은 배양판 역할을 했죠.


농경사회부터 대중 전염병 시작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은 제러드 다이아몬드. [연합뉴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인구가 밀집되고 숙주가 많을수록 세균과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쉽다”며 “대중 감염병은 1만 년 전 농경시대에 시작됐고 최초의 전파자는 가축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수렵 인류는 오염 지역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농경 인류는 배설물 등 각종 오물에 뒤엉켜 살았다”고 설명합니다.

『총·균·쇠』는 인류 역사를 뒤바꾼 세 가지 요인 중 하나로 세균·바이러스를 꼽습니다. 이들이 증식하는 방식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살모넬라균처럼 감염된 육류를 먹고 전염되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곤충이 매개가 돼 인간을 물어서 전염시키는 방식이죠. 모기(말라리아)와 벼룩(페스트)이 대표적입니다.

셋째는 상처 부위의 진물 등을 통해 옮는 경우입니다. 18세기 미국의 일부 백인들은 원주민을 죽이기 위해 천연두 환자가 쓰던 담요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넷째는 숙주의 이상 반응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재채기(인플루엔자)나 설사(콜레라)로 다른 숙주에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것이죠.


문명이 키운 공포 '판데믹'

로마시대의 원형극장. [중앙포토]

인류 역사에는 그 동안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가 등장했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이들을 정복하기 시작했지만 ‘우한 폐렴’처럼 변종의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와 인간을 위협합니다. 다이아몬드는 “영리한 바이러스는 인간의 면역체계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분자구조를 변화시켜 생존한다”며 “세균·바이러스 입장에선 진화의 한 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생존과 번식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입니다. 세균·바이러스도 마찬가지죠. 이런 자연현상까지 인간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염병이 커지고 확산되는 것은 분명한 사회현상입니다. 농경생활이 전염병을 처음 만들어 냈듯, 인간 문명의 발달이 더 큰 전염병을 불러온다는 뜻입니다.

사회현상으로서 처음 기록된 전염병 사례는 ‘안토니우스 역병’입니다. 국경 안 쪽에서 발병했던 ‘아테네 괴질’과 달리 동쪽의 파르티아와 전쟁 후 로마로 돌아온 병사들이 전파자였습니다. 165년부터 180년까지 병이 돌면서 수백만 명의 로마시민이 죽었고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우스(121-180)의 목숨까지 앗아갔습니다.


밀집 도시, 발달한 교통이 원인

영국 런던의 이스트스미스필드(현 조폐국 부지)에서 발굴된 14세기 흑사병 희생자 유골. [중앙포토]

다이아몬드는 “당시 로마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세계교역의 중심지였다”며 “문명의 발달이 거대한 세균 번식장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유발 하라리도 “밀려드는 상인과 공직자, 순례자로 붐비던 고대 도시는 인류 문명의 산실인 동시에 병원균의 이상적 번식처였다”고 말하죠. (『호모 데우스』)

중세로 넘어오면서 도시가 커지고 교역이 활발해지자 전염병의 파괴력도 강해졌습니다. 중세 유럽을 뒤흔들었던 흑사병(페스트)은 1346~1352년 75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당시 유라시아 인구의 4분의 1이 넘었죠. 의학기술이 진일보한 1918년에도 스페인 독감으로 250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사망한 군인(약 1000만 명)보다 훨씬 많았죠.

현대 사회는 판데믹의 위험성이 훨씬 큽니다. 과거에는 병균의 전파 속도가 느렸습니다. 기껏해야 도보나 말을 통해 이동하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하루 이틀이면 전 세계에 전파됩니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들이 많아졌고요.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병한 우한도 인구 1000만에 교통의 요지입니다.


사회적 아노미 부르는 판데믹

판데믹 상황의 혼란과 갈등을 실감나게 그린 영화 '컨테이전'. 홍콩의 박쥐가 감염의 원인으로 나온다. [영화 컨테이전 캡처]

영화 ‘컨테이전(2011)’은 홍콩 출장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아내가 발작을 일으키며 죽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전 세계에서 비슷한 증상이 보고되고 그 원인이 홍콩의 한 식당 때문이라고 밝혀집니다. 야생 박쥐의 변을 먹고 자란 돼지를 요리사가 맨 손으로 다루면서 전염이 시작된 것이었죠. 이번 우한 폐렴의 원인도 박쥐로 지목됩니다.

영화는 아주 단순한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전 세계를 위험에 빠트리는지 자세히 보여줍니다. 홍콩처럼 인구가 밀집한 요충지를 배경으로 삼지 않았다면 이처럼 빨리 확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2002년 말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사스가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것도 홍콩에서 감염자가 나온 뒤였죠. 결국 문명의 발달이 판데믹을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치명적인 바이러스인 에볼라는 사스와 신종플루(2009년)처럼 전 세계적인 판데믹이 되진 않았습니다. 1976년 처음 에볼라가 발견된 콩고는 홍콩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인체를 매개로 전염되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마존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 큰 밀림인 콩고분지(362만㎢)를 넘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안에 치사율이 최대 90%라는 점도 확산이 더딘 이유였습니다. 리 골드먼 미국 컬럼비아대학병원장은 “숙주가 죽으면 바이러스도 소멸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오히려 전염이 어렵다”고 합니다. (『진화의 배신』)


북극에서 깨어난 고대 바이러스

시베리아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발견된 3만년 전의 고대 바이러스. [Phys.org)

판데믹은 광범위한 전염도 문제지만 감염 우려에 따른 불안과 공포가 더 큰 문제입니다. 여기에 가짜 뉴스까지 더해지면 사회적 아노미로 치닫습니다. 사재기가 벌어지고 정부에 대한 불신도 커져 대혼란이 발생합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한 폐렴으로 인한 중국인 기피 현상이 생기는 것도 아노미의 초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에 판데믹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치사율까지 높다면 아노미는 더욱 심해지겠죠. 미국의 의학 저널리스트 소니아 샤는 “지난 50년 간 300종 이상의 감염병이 예전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지역에서 새롭게 출현했고 다음 두 세대 안에 인류에 치명적인 판데믹 바이러스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판데믹: 바이러스의 위협』)

그 중 하나가 빙하에 갇혀 있는 고대 바이러스입니다. 영국의 과학기술 전문매체 ‘Phys.org’는 2015년 8월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에서 발견된 ‘몰리바이러스 시베리쿰’을 집중 보도했습니다. 3만년 전의 바이러스로 화석이 아닌 살아있는 형태여서 큰 화제가 됐죠. 이를 발견한 프랑스국립과학센터의 장 미셀 클라베리 박사는 “바이러스가 완벽한 냉동 상태로 보존돼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인류의 천적은 바이러스 또는 자신

판데믹 상황의 혼란과 갈등을 실감나게 그린 영화 '컨테이전'. 홍콩의 박쥐가 감염의 원인으로 나온다. [영화 컨테이전 캡처]

아직까지는 고대 바이러스가 현 인류에게 감염력이 있는지, 치명적 위험이 있는지 규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3만년의 시간을 점프한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력을 보인다면 종말에 가까운 재난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인체는 면역이 없는 항원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천연두 바이러스에 몰살된 아즈텍과 잉카 문명처럼 말이죠.

인간은 생태계에서 유일하게 천적이 없는 종입니다. 기원전 1억 명에 불과했던 인류는 3년 후면 80억 명을 돌파합니다. 자연은 늘 생태계의 위협이 되는 종에겐 천적을 만들어 균형을 맞춰 왔죠. 현재 인류의 가장 큰 천적은 바이러스가 그 자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가 판데믹에 대비해야 할 것은 비단 백신뿐일까요?

윤석만 사회에디터 겸 논설위원 sam@joongang.co.kr

#유튜브에서도 인간혁명의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Ipp-I9olmN4

■ 윤석만은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국회·청와대·교육부 등 다양한 출입처를 거쳤다. 2012년 한국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희대에서 미래 사회를 주제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과학·기술·산업만이 아닌 인간과 문화, 의식과 제도의 측면에서 조망하며 미래인문 분야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휴마트 씽킹』, 『리라이트』, 『인간혁명의 시대』(2018 세종도서), 『미래인문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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