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놓고 숲에서 놀게 했더니.. 영국 아이들 표정이 달라졌다

런던·디드콧·베드퍼드(영국)/김정하 탐험대원 2020. 1.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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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미래탐험대 100] [74] 학교 절반이 숲교육, 영국.. 산림에 관심 많은 김정하씨
국어·수학 대신 금요일마다 숲교육 - 도랑 걷고 새 소리 듣고 가지 치고
모닥불 피우고.. 교사 4명 동행 "우울하던 아이들 금세 활기"
숲교육협회 등록 교사 1800여명 -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서 배워
최근엔 노년층까지 평생 프로그램.. 산림 64%인 한국은 걸음마 단계
런던·디드콧·베드퍼드(영국)=김정하 탐험대원

"폭포를 찾으러 가자!"(교사 미라) "좋아요!"(아이들)

지난 8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북서부에 있는 해로의 '올드 레딩 숲'. 숲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공립학교인 '벨몬트 학교' 선생님 4명이 다섯 살짜리 학생 5명을 인솔해 숲으로 들어갔다. 한국이라면 교실 수업이 한창일 시간인데 아이들은 오전 내내 숲을 누볐다. 도랑을 따라 물을 튀기며 걷거나 비스듬히 누운 나무를 기어오르고, 모닥불을 피우고 나무 자르는 법을 배웠다. "오늘이 숲을 견학하는 특별한 날인가요?"라는 물음에 교사 피오나는 "벨몬트 학교의 3~11세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마다 학급별로 숲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아이들이 국어·수학을 배우는 대신 매주 숲에 나와 뛰어놀며 교육을 받는다는 게 신기했다.

벨몬트 학교는 최근 영국에서 확산하고 있는 '숲교육'의 모범으로 꼽히는 곳이다. 2017년부터 학교 내 자체적으로 숲학교 교사 4명을 두고, 재학생에게 정규 교과 과정 중 하나로 숲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숲의 기능과 역할부터 나무를 심고 껍질을 벗기는 방법, 동물 은신처를 만드는 법 등을 가르친다. 교사 미라는 "아이들에게 자연에서 뛰놀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숲을 돌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숲학교의 목표"라고 했다.

나는 대학 입학 전까지 전기도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는 강원도 산자락에서 가족과 살았다.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산을 넘었고 하교 후엔 동생과 숲으로 모험을 떠났다. 숲은 내 정신과 신체를 단련시킨 또 다른 '학교'였다. 자연스레 대학에서 산림 경영을 전공하며 우리나라 아이들도 숲에서 뛰놀며 자랄 수는 없을까 고민하며 영국을 찾았다.

숲이 스마트폰보다 즐거워

산업화와 전쟁 등으로 심각한 산림 파괴를 겪었던 영국도 2000년대 초반까지 숲교육이 활성화되지 못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민간단체들이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의 숲교육을 본떠 들여오기 시작했고, 최근 10년간은 숲교육을 제공하는 공·사립 학교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확산하는 추세다. 벨몬트 학교처럼 자체적으로 숲교육을 실시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숲교육 전문 기관과 외주 계약을 맺고 숲교육을 제공한다. 벨몬트 학교를 방문한 뒤에 찾아간 영국 숲교육 기관 '웨어 더 프룻 이즈' 대표인 새라 로풀은 "아동·청소년 교육이 실내에서 받는 교과 교육에만 치우쳐 있다는 반성이 나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숲학교 교사 네트워크인 숲학교협회(FSA)에 등록된 교사 수는 1800여 명에 달한다.

지난 8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북서부의 해로에 위치한 벨몬트 학교 학생들이 숲교육 선생님과 함께 인근 ‘올드 레딩 숲’을 찾았다. 교사 미라(왼쪽)가 가지치기 도구를 보여주며 “누가 먼저 나뭇가지를 잘라 볼래?”라고 묻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고 있다. /김민정 기자

효과도 크다. 학생들은 물론 선생님까지 만족도가 높다. 벨몬트 학교 교사 제임스는 "화가 나 있고 우울해하던 아이들이 숲에 다녀오면 정서적으로 안정을 되찾는 것을 자주 본다"면서 "숲에 가면 아이들 표정부터 행복하게 바뀐다"고 했다. 벨몬트 학교에 다니는 다리 만수르(10)군은 "숲에 가보니 스마트폰을 가지고 노는 것보다 훨씬 즐거웠다"며 "침묵하듯 고요한 숲에서 새들이 노래하는 것도 듣는다"고 했다. 벨몬트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먼 지역에서 찾아오는 학부모도 늘고 있다.

숲 교육자들은 숲에서 정기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동·청소년의 스마트폰·인터넷 중독을 예방하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영국 베드퍼드에서 만난 숲교육 제공 기관인 'FSLI'의 크리스티나 디 대표는 "아이들은 휴대전화나 컴퓨터 스크린을 보는 시간이 많아 시력은 물론 운동 능력과 언어 구사력도 떨어진다는 연구가 많다"며 "학교 수업을 마치고 걸어나오는 아이들 모습은 움직임이 부족한 탓에 갓난아이 걸음마처럼 어색해 보이기까지 한다"고 했다. 그는 "매년 300~400개 학교에 숲교육을 제공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신체 능력뿐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성, 학습 태도 등이 향상되고 있다고 한다"고 말했다.

체계적 산림 교육 고민해야

영국에서 숲교육은 아이들뿐 아니라 노년층이 겪는 사회적 단절 문제 등도 해결해주고 있었다. 영국에선 여러 민간단체가 성인 대상 숲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데, 지난 9일 환경보전 단체인 'TCV'가 운영하는 '그린짐' 프로그램에 참여해봤다. 2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참가자 10여 명과 함께 런던의 한 공원에서 씨앗 심는 법 등을 배우며 조경 활동을 했다. 이런 모임이 영국에서만 약 2000개 운영되고 있다. 활동 장소는 지자체가 제공한다. 5년 전 대학 사무직에서 은퇴한 뒤 그린짐에 참여해온 캐럴라인 클라크(70)씨는 "혼자 살고 있어 은퇴 후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세 번 그린짐에 참여하면서 삶이 즐거워지고 건강관리까지 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참가자 폴 와이나트(68)씨도 "은퇴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과 대화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숲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재미를 찾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 중 산림이 약 64%로 세계적으로 녹화에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그러나 숲을 활용하는 '녹색 교육'은 걸음마 단계다. 우리도 영국처럼 산림 교육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하는 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아이들이 나무를 오르거나 계곡을 따라가며 첨벙첨벙 물을 튀기고 숲을 거닐면서 느낄 이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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