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 다이내믹 도넛] 휴거, 빌거, 이백충

2019. 11. 14.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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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ㅣ사회비평가

작년으로 기억한다. 어느 초등학교 옆을 걸어가다 들었다. “야, 걔 빌거잖아. 차도 엄청 구림.” “진짜?” 그 뒤로도 뭔가 재잘댔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빌거”란 말이 유리 조각처럼 콕 박혀서, 종일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빌거” 또는 “빌거지”는 ‘빌라 사는 거지’다. “월거지”는 ‘월세 사는 거지’다. 오래전 “휴거”란 말이 중고생들 사이에 유행한다는 뉴스도 화제였다. “휴거”는 주택공사의 임대아파트 브랜드인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다. “이백충”도 있다. 월수입 200만원인 사람을 비하하는 말이다. 그래도 거지는 사람이기는 한데 이백충은 아예 ‘벌레’다.

“빌거”처럼, “이백충”과 “유족충”(세월호 유가족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말도 육성으로 직접 들은 경험이 있다. 웹에서 수백번은 본 단어인데도 눈앞에서 인두겁을 쓴 자의 음성으로 들으니 글자 그대로 전율이 일었다. 이 경우 ‘백문이 불여일견’은 틀렸다. ‘백견이 불여일문’이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중요한 보고서를 하나 냈다. ‘혐오표현(hate speech) 리포트’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한국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혐오표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해 만들어낸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전문가들이 외국 사례와 한국 현실을 두루 고려해 작성한 만큼, 적어도 문제와 관련해 한국에서 지금까지 제출된 보고서 중 명징성과 접근성에서 가장 빼어난 성과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보고서 집필자들(이승현·이준일·정강자·조혜인·한상희·홍성수)께 지면을 빌려 깊이 감사드린다.

아쉬운 것은 각종 혐오표현을 다루면서도 “빌거” “휴거” “이백충” 같은 계급 차별적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거의 논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가 외국 사례를 참고해 규정한 혐오표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 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집단에게 ①모욕 비하 멸시 위협 또는 ②차별·폭력의 선전과 선동을 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조장·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

혐오표현과 직결된 일곱 가지 이유가 열거되지만, 사회경제적 지위 또는 계급은 언급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혐오표현 리포트’ 발간 직전 검토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때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에서 “빌거”나 “이백충” 같은 계급차별적 혐오표현이 상당 기간 형태를 바꿔가며 이어지고 있다는 것. 이런 현상은 다른 나라에서 잘 관찰되지 않거나 문제시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혐오표현 사례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것. 그 발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종 보고서에 두 문장이 들어갔다.

“혐오표현의 대상집단에 부여된 속성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니거나, 인격적 훼손 없이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다만 최근 한국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나 경제적 상황 등에서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집단을 멸시하고 사회에서 배제하는 식의 혐오가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13쪽)

이론적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는 성별이나 인종 같은 정체성과 구별되는 속성이기는 하다. 그러나 계급 역시 “개인의 자발적 선택”이 아닌 경우가 많으며 “인격적 훼손 없이 자신의 의지로 바꾸”기도 어렵다. 요즘처럼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세습이 굳어진 사회에서 ‘노오력’만으로 계급 상승을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개천 용을 찾느니 유니콘을 발견하는 게 빠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계급은 신분을 넘어 인종적 표지가 되었다. 영화 <기생충>의 ‘반지하 냄새’는 그렇게 ‘자연화’된 계급차별에 대한 하이퍼-리얼한 묘사였다. 가난한 이에 대한 차별과 모욕은 이미 인종차별처럼 벌어지고 있다. 그 배경에 대해서 또 다른 분석이 필요하겠으나, 가장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려놓을 만한 건 한국의 유별나게 높은 물질주의 성향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경제가 일정 정도 성장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 인권, 생태주의, 타인에 대한 개방성 같은 탈물질주의 가치 선호가 높아진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이미 탈물질주의가 높이 측정되어야 할 경제수준임에도, 여전히 경제성장, 안전, 타자에 대한 폐쇄성 등의 물질주의 경향이 너무나 강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휴거” “빌거” “이백충”은 그런 ‘과잉 물질주의 사회’의 치부다. 계급 차별적 혐오표현이 진지하게 사회문제화되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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