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막장드라마' 욕하면서도 열심히 보는 심리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2019. 11. 12.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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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언젠가 드라마 PD를 만난 적이 있다. 그분 얘기가 드라마를 연출하고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강의도 하면서 그 자신도 드라마의 핵심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찾은 해답은 결국 드라마는 곧 ‘갈등 그 자체’라는 것이었다고. 그 얘기를 들으니 우리가 왜 막장드라마라고 비난하면서도 그렇게 열심히 보는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끊임없이 미친 듯한 갈등을 만들어내니 계속해서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삶은 곧 갈등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성립되지 않을 수 없다.

한자어에서 ‘갈등(葛藤)’이라는 글자는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이 칡과 등나무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아 올라가는 습성을 지녔다 한다. 즉 하나는 시계 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그 반대로 올라가다가 서로 얽히고설키게 되고, 그렇게 한 번 얽힌 뒤엔 좀처럼 그것을 풀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면 갈등이란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혜안(?)이 놀라울 뿐이다.

언젠가 감정조절이 안되는 자신이 싫다는 문제로 상담을 원한 사람이 있었다. 남들은 이성적이고 일 처리도 잘하고 감정조절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신은 전혀 그렇지 못해 그런 스스로가 싫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나의 임상경험을 돌아봐도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상대방은 아직 당신이 보지 못한 그 누군가는 완벽하게 감정 조절을 잘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 자기는 역시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완강한지 자기비하의 덫에서 헤어날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물론 그도 나중에는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그러기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했다.

그의 사례는 자신과의 갈등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부딪쳐야 하는 여러 갈등 외에 그처럼 스스로 만들어내는 갈등까지 정말 우리의 삶은 갈등 그 자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내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하면 어떻게 해서든 그 갈등을 해결할 수 있지만 둘 다 아니면 꼼짝없이 거기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 딱 하나밖에 없다. 칡이나 등나무 중 어느 하나가 양보해서 ‘너 먼저 올라가, 나는 천천히 가지 뭐’ 하면 서로 깊이 얽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양보를 할 것인지 하는 문제로 또다시 팽팽하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결국 그 자체로 해법은 없는 셈이다. 그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체로 서너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나 자신과의 갈등에서 해법은 만족(滿足)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만족이라는 단어의 한자 풀이도 꽤 흥미롭다. 물이 딱 발목까지 차는 것이 만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목까지, 아니 머리끝까지 다 차기를 바라니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을 푸는 방법은 소통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소통(疏通)’이라는 한자어도 흥미로운 것이, ‘소(疏)’는 발걸음이 멀리까지 흘러 나간다는 뜻이고 ‘통(通)’은 길 사이로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즉 누군가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가려고 하다 보면 당연히 소통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방법은 스트레스를 쌓아 두지 않는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쉬고 운동하면 된다. 그러려면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현대인들의 불면증 원인 중 하나가 자야 하는 시간에 못 자는 것이다. 인간도 생물로서 자연의 일부이므로 밤이 깊으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나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사실 의학적으로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가 가장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에 자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당연히 수면장애가 늘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신체적 건강을 위해서나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나 자연에서 지혜를 찾는 것이 삶의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의 하나인 것이다.

양창순 정신과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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