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알퍼의 한국 일기] 쓰레기 분리배출·아내 말대로 장보기.. 韓·英 아저씨들의 자화상

팀 알퍼 칼럼니스트 2019. 10. 22.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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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아저씨 어깨, 지구상 어디서나 똑같아
아내는 구박하고 애들은 눈도 안 마주쳐.. 그래도 희망 있으니
부패 정치인·방탕 연예인 반대로만 가면.. 우리도 영웅·매너男
팀 알퍼 칼럼니스트
'패배'에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실의'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릴까? '굴욕'은 어떤 모습일까? 답을 알고 싶다면 일요일 밤 9시쯤 우리 동네를 방문해보길 바란다. 우리 아파트는 일요일에 분리수거를 한다. 자신들의 속내만큼 깜깜한 어둠 속에서 중년의 남자들이 비닐봉투, 망가진 장난감, 그리고 스티로폼 등을 한 아름 들고 쓰레기통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나와 같이 그중 한 명인 입장이라면 그들의 공허함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가슴 아프게 느껴질 것이다.

슬픈 것은 이들이 스스로 분리수거 시간을 알고 나왔다기보다는, 일주일의 육아에 지쳐 상냥함과 친절함 따위는 잃고 짜증만 남은 와이프의 명령을 받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더욱 슬픈 것은 혼자 나가 다른 중년의 좀비들과 함께 쓰레기를 처리하고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굴욕이 아니다. 이것이 주말의 마지막 할 일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내일은 월요일. 어떤 지옥 같은 주말을 견뎌냈는지 이해해주는 아량과 배려는 찾아볼 수 없는 윗사람들에게 굽실거려야 하는 반갑지 않은 또 다른 한 주의 시작이다.

한국 중년 아저씨들의 삶은 비참하다. 결혼 후 행복했던 나날은 멀리 가버린 듯하다. 신혼 몇 년은 행복했다. 신혼 초의 아내는 사랑과 관심을 오롯이 우리에게 다 쏟았다. 그것은 우리를 강하고 자신감 넘치게 만들었다. 그 시절 우리는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수 있을 것같이 느꼈다.

세월이 흘러 생계를 짊어져야 하는 중년 아저씨가 되면 가장으로서 책임감은 어깨를 짓누르고 한때 내가 미치도록 사랑했던 여인은 경멸을 은근히 감추며 나를 바라본다. 한때 온종일 껌 딱지처럼 달라붙어 애정을 갈구하던 아이들 또한 이제 돈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화는커녕 눈 맞춤조차 피하려고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나의 모국 영국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 수퍼마켓 안에서 씁쓸한 장면을 목격했다. 영국 아저씨들은 마트 안에서 부지런히 진열대 사진을 찍어 아내에게 보낸 후 전화를 하고 있었다. "맨 밑 선반에서 오른쪽에 있는 거? 빨간색 맞지?" 백발이 성성한 신사들은 더 처량하다. 아내가 손으로 휘갈겨 쓴 쇼핑 리스트가 천 년 된 보물지도라도 되는 양 조심스럽게 움켜쥐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판독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아저씨의 운명이 지구상 어디에서나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물이라도 흘리고 싶었다. 어디에 살거나 우리는 지갑이 되거나 분리수거를 하거나 마트에서 휴대전화로 와이프에게 조종당하는 쇼핑 아바타가 되어야 한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을 수 있을까? 다행히도 그렇다.

영국과 한국의 최근 수십 년 역사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40~60세 남성들에게 유린당했다. 양국의 남성 정치인들, 은퇴한 스포츠 스타, 중년 배우들은 지난 삼십 년 동안 동성인 남성들에게조차 수치를 안겨줄 행동을 일삼았다. 여자들과 아이들, 젊은 남성들은 불혹을 넘긴 남성이 맹목적인 애국주의를 강요하고 갑질과 탐욕, 여성 차별 등으로 가득 찬 쓸모없는 부류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 대한 기대치는 엄청나게 낮다.

불룩해지는 배와 점점 벗어지는 머리, 그리고 하얗게 변해가는 체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우리를 깔보기 시작한다. 젊은 남자들은 우리가 더 이상 전력 질주로 버스를 잡거나 공을 찰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여성들은 우리의 분노와 탐욕을 알고 항상 우리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온 세상이 우리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또한 스릴 있는 일이다.

침실에서나 운동장, 회의실에서 우리가 완전히 쓸모없지 않다는 것만 증명해도 세상은 놀랄 것이다. 회의 중 입을 벌리고 졸거나 불붙은 담배꽁초를 자동차 창문 밖으로 던지는 일만 피해도 은발의 기사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100m를 심장마비 없이 완주해도 영웅이 될 수 있으며 술에 취해 여자 동료의 신체를 움켜잡는 일만 없어도 매너남으로 등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부패한 정치인들과 연예인들 행적을 반대로만 좇는다면 우리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도 중년의 삶이 힘겹게 느껴진다면 영국의 뉴스에서 힘을 얻어보자.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부분 사람은 중년이 55세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다른 조사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노년이 62세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불모지와도 같은 중년의 시기가 다행히도 7년밖에 안 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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