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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증인들

기

후

변

화

의

증

인

들

우리는 아직 나의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눈앞에서 벌어지는 위기이자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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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닌 기후위기입니다

 “지구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지속된다면 2030년과 2052년 사이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해 1.5도가량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여러 지역적인 기후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평가되는데, 여기에는 많은 지역에서 극한 기온의 온난화, 일부 지역에서 호우 빈도와 강도의 증가, 일부 지역에서 가뭄 강도 또는 빈도의 증가 발생이 포함된다.”

-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

2020년은 한국에 이상기후 현상이 유독 잦았다. ‘1년에 한 번’ 정도 발생하던 이상기후 현상이 ‘매 계절마다’ 발생했다. 겨울엔 이상고온 현상이, 봄에는 이상고온과 이상저온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기록적 폭염’이 예고됐던 여름, 폭염 대신 예상치 못한 ‘폭우’가 닥쳤다. 역대 최장기간(54일) 동안 지속된, 내린 비의 양(686.9㎜) 역시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장마였다.

폭우로 잠긴 전북 남원시 한 마을

2020년 8월 폭우로 인해 당시 섬진강 제방이 유실된 전북 남원시 금지면 한 마을이 물에 잠겨있다.

‘기존에 없던 패턴’의 장마였다. 이번 장마 같은 이상기후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까. 현 추세대로라면, 아마 그럴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은 올해 누군가에겐 낯설게만 느껴지는 ‘기후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증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바다와 땅, 산에서 일하는 이들은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기후변화에 대해 잘 모르지만”이라는 전제를 달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각종 보고서상의 ‘숫자’로 존재하던 것들이 이들에겐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위기이자 현실이었다.

01

바다

해삼, 멍게, 전복 실종사건의 전말

“예전엔 겨울이 되면 2월까지 바다가 너무 차가웠어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뜨겁고 그랬죠. 그런데 요즘엔 뭐, 겨울, 여름이 없는 것 같아요.”

김혜숙씨는 해녀다. 제주도 옆의 작은 섬, 우도에서 평생 물질을 했다. 물때에 맞춰 출근해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장비를 점검한 뒤 바닷속으로 7~8m씩 잠수해 해산물을 땄다.

그렇게 45년이 흘렀다. 그동안 김씨의 작업 방식이나 장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잠수복의 재질이 조금 더 좋은 것으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옛날과 같은 모양의 태왁(어구)을 쓰고, 김서림을 방지하기 위해 수초로 수경을 닦는다.

하나 바뀐 것이 있다면 김씨의 일터, 바닷속의 상황이다.

제주도 우도 비양도 앞바다에서 해녀가 물질을 끝내고 나오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그는 바닷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곤 했다. “가을이 되면 바닷속이 막 써늘해지니까 옷(고무로 된 잠수복)도 두꺼운 옷을 입었어요. 겨울이면 두께 5㎜, 6㎜짜리를 바꿔가며 입었죠.”

하지만 그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두께의 잠수복을 입지 않는다. 그는 “위아래 4㎜짜리만 입어도 4~5시간은 참을 수 있다. 바닷속이 따뜻해지면서 이제 두꺼운 건 필요 없게 됐다”고 했다.

바다 온도 상승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국 바다의 겨울철 수온은 1998년 이후 연평균 0.11도씩 상승했다. 2010년 이후로는 0.21도씩 높아져 상승세가 더 가팔라졌다. 이러한 수온 상승은 동해, 서해, 남해 전 해역에서 확인된다. 역대 가장 따뜻했던 겨울로 기록된 지난 겨울(지난해 12월~올해 2월) 해양 수온은 13도를 기록해 1998년보다 2.2도, 지난해보다 0.5도 올랐다.

전문 다이버인 김병일씨는 이를 기록으로 남겼다. 김씨는 다이빙이 아직 생소하던 1986년 다이빙을 처음 배웠고, 지금은 제주 서귀포에서 다이빙숍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지난 34년간 다이빙을 할 때마다 측정한 수온과 바다의 탁도, 관찰한 해양생물 등을 자신의 일지에 빠짐없이 기록했다.

그는 “30년 전에는 서귀포 앞바다 최저 수온이 2~3월의 경우 13도까지도 내려갔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엔 15도로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16도로 올라갔다”며 “수중에서 1도의 변화는 육상에서의 10도와 맞먹는다. 그래서 30년간 2도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변화”라고 했다.

‘따뜻해진 바다’에서 해조류가 사라져가고 있다

‘따뜻해진 바다’에선 예전에 두 사람이 흔히 마주쳤던 것들이 줄어들고 있다. 가장 눈에 띄게 자취를 감춘 것은 해조류다. 김혜숙씨는 “옛날엔 바닷속에 해초들이 많아서 해초에 오리발이 막 걸렸다. 발이 걸릴까봐 일을 천천히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없다”고 했다. 김씨는 이날 뿔소라 100㎏을 채취했다.

인터뷰대사

- 김혜숙(해녀)

톳도 줄었다. 김씨가 속해 있는 비양도 해녀의집은 마을 사업으로 매년 톳을 채취하는데, 보통 200포대씩 수확하던 톳이 올해는 100~150포대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마저도 크기가 현저하게 줄었다.

김씨는 “예전엔 톳 크기가 우리 키만치 해가지고 포대에 담지도 않고 바닥에 펼쳐놓고 (등에) 지고 다니고 그랬는데, 요즘엔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요만하다”며 “예전엔 4~5월 되면 물가에 우뭇가사리, 톳, 미역 등 해초가 풍성하게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없다”고 했다.

다이버 김병일씨도 “예전에는 한 10m 이상 자라는 모자반이 많아서 해녀들이 물질하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했는데, 최근 10년 동안 급격히 줄었고 지금은 거의 안 보인다”고 말했다.

제주 바다의 아열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감태와 톳, 모자반이 있었던 자리는 낯선 것들이 메워갔다. 대만이나 필리핀, 호주 같은 열대 해역에 서식하는 그물코돌산호나 거품돌산호 같은 것들이다.

그물코돌산호는 1990년대 말까지도 전문 다이버들에게만 가끔 목격될 정도로 희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급속하게 퍼졌고, 이제는 제주도 전 연안에 서식 중이다.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의 고준철 해양수산연구사는 2014년 2월부터 제주 바다에 서식하는 아열대 지표종인 그물코돌산호 하나를 6년째 관찰 중이다. 처음 크기가 6.6㎝에 불과했던 이 그물코돌산호는 지난해 27㎝가 됐다.

아열대 지표종 그물코돌산호 연도별 직경

※출처: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

아열대 지표종 그물코돌산호 연도별 직경 직선 그래프

고 연구사는 “암반에 붙어 서식하는 그물코돌산호가 기존의 생물들을 밀어내고 있다. 감태, 모자반이 있던 자리를 그물코돌산호나 거품돌산호 같은 것들이 메워가다보니 소라나 전복, 성게가 이동하거나 없어지는 상황”이라며 “해녀들이 그물코돌산호 때문에 소라가 도망갔다고 하는 이야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열대 해역인 오키나와, 필리핀, 대만에서 살던 열대종들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인 제주도 연안까지 서식중이다. 지난 10년간 제주도 연안 어획실험 결과 아열대 어종의 출현빈도는 52%로 절반을 넘어섰다.

제주 바다의 아열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고 연구사는 “평균적으로 70~80종이 잡히는데, 그중 40~50종은 아열대 어종”이라며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아열대 어종들의 출현 빈도가 높아졌고, 개체수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바다 수온 상승이 지속된다면, 한국의 바다는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고 연구사가 질문에 답했다.

“기후변화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진다면 30~50년 후 한국의 바다는 대만의 바다 환경처럼 바뀔 수 있다고 조심스레 예측합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온이 최근에 비해 4~5도 오른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죠.”

02

산

사철 검푸르던 지리산의 회색 탈모

30년의 산장생활, “어느날 풍경이 낯설게 보였다”

산을 어쩌다가 찾는 이들에게 5월 초의 지리산은 썩 건강해 보인다. 밝은 연두색부터 탁한 풀색까지, 세상의 모든 초록이 지리산에 있는 것 같다.

지리산국립공원 산청분소 직원인 민병태씨(64)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의 기억 속 지리산의 색깔은, 더 짙었다. “저기가 옛날에는 시커맸는데…. 시커맸어요, 침엽수 때문에. 사시사철 ‘푸른’ 게 아니고, 사시사철 ‘검은’색이었죠.”

이곳의 직원이 되기 전 그는 30년간 지리산 치밭목대피소의 산장관리인이었다. 지리산 해발 1425m에 위치한 이 대피소는 지리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천왕봉(1916m)과 500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높고 외딴 곳에 있다.

수십년간 산 한가운데서 살았던 그는 지리산, 그중에서도 인간의 접근이 쉽지 않은 아고산대 생태계 변화를 가까이서 목격한 몇 안 되는 증인이다.

지리산 고산지대 구상나무의 분포 지도

※출처: 산림청 / 국립산림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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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산대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활엽수들이 있는 온대림과, 나무가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고산지대 사이에 위치한 식생대다. 이곳의 연평균 기온은 4~5도 이하로 춥고, 비와 눈이 많이 내리며, 바람이 많이 분다. 아고산대는 민씨가 기억하는 ‘사철 푸르다 못해 검었던’ 상록침엽수의 주 서식지이기도 하다. 상록침엽수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지리산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것은 구상나무(Abies Koreana)다.

지리산 아고산대의 침엽수 분포 면적은 총 41.88㎢인데, 이 중 99.84%가 구상나무의 서식지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인터뷰대사

- 민병태씨(지리산국립공원 산청분소 직원)

그가 반야봉 능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예전엔 숲이 시커멀 정도로 전체가 다 침엽수였는데, 지금은 활엽수들이 치고 올라와서…. 탈모현상처럼 보여요. 다 녹색이 됐어요.”

그와 해발 1320m의 임걸령까지 가는 길에 구상나무 고사목들이 모여있는 곳이 나왔다. 나무들은 다양한 형태로 죽어있었다. 누군가 나무를 손가락으로 집어 땅에서 쏙 뽑아낸 것처럼 뿌리가 통째로 뽑힌 채 죽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뿌리는 박혀 있으나 중간이 뚝 부러져 있었다.

민씨가 찢어져 죽은 나무 옆에 섰다. 땅에서 산 시간보다 산에서 산 시간이 더 긴 그는 나무를 ‘친구’라고 불렀다. “싱싱한 친구들은 탄력이 좋아서 바람에 움직였다가도 다시 돌아오죠. 그런데 탄력이 없는 친구들은 그냥 갈라집니다. 통째로 찢어져요. 한쪽은 이렇게 서 있고, 한쪽이 (찢어져) 쓰러져 버리면, 남아있는 부분도 결국은…(죽는 거죠).”

사진 중앙의 핸들을 클릭한 채로 좌우로 드래그하며 전후 사진을 비교해보세요

한라산 진달래밭 구상나무림의 2009년 모습(좌) 2016년 모습(우)
2016년 사진에서 하얗게 고사한 구상나무의 모습이 보인다.

클릭아이콘

26년차 환경운동가인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의 서재철 전문위원도 지리산 구상나무의 고사 현장을 목격한 순간을 또렷이 기억한다. 2010년 백두대간 생태조사를 하던 때였다. “(보자마자) ‘아, 죽어간다’ 했어요. 그런데 그 뒤로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거예요. 2012년, 2013년에는 더 많이 보였어요.”

올해 2월 발간된 ‘지리산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개체 공간정보 구축 및 입지환경 분석’ 연구에 참여한 국립공원연구원 이나연 연구위원은 “전 세계적으로 고지대에 살고 있는 구상나무 같은 ‘바늘잎’ 나무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다”면서 “지구의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나무는 여러 원인으로 고사할 수 있다. 태풍이나 강풍에 꺾일 수도 있고, 자연적으로 수명이 다할 수도 있다. 최근 10여년간 가속화되고 있는 구상나무 고사의 주된 원인이 ‘기후변화’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전북 지대별 연평균 기온 추이

※출처: 국립공원연구원

전북 지대별 연평균 기온 추이 직선 그래프

이 연구위원은 ‘온도 상승’을 들었다. 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전라북도 남원의 연평균 기온은 2012년 11.9도였는데, 2019년 13.3도로 1.3도가 올랐다. 같은 기간, 고지대인 지리산 반야봉 지역의 연평균 기온은 4.2도에서 7.7도로 상승했다.

“겨울철 눈 녹은 물이 토양으로 흡수되면서 나무의 생육을 활성화시키는데, (눈의 양이 줄면서) 나무들이 한창 생육을 해야 할 시기에 수분이 부족해졌다”고 말했다.

왜 우리는 구상나무의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나

사실 아고산대는 거의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어서 구상나무가 없어졌다고 당장 ‘인간의 생활’에 타격을 줄 것 같진 않다. 구상나무가 사라진 땅이 황무지로 남는 것도 아니다. 구상나무가 고사한 자리엔 따뜻한 곳에서 잘 자라는 낙엽활엽수가 들어서고 있다. 구상나무가 외국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가 있다고는 하나, 그게 구상나무 고사를 우려해야 하는 이유로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구상나무의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 연구위원은 ‘비행기’를 비유로 들었다.

“비행기를 생태계라고 한다면 부품 한두 개가 빠져도 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부품이 사라지거나 고장나면 날 수 없잖아요. 아고산 생태계가 사라지는 것도 그런 위험성이 있는 거죠. 구상나무의 고사는 단순히 침엽수에서 낙엽활엽수로 ‘세대교체’가 되는 게 아니라, 생태계 자체가 유지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부분으로 봐야 합니다.”

03

산의 목격자

건조해진 기후, 더 커지고 오래가는 산불

산불의 세 가지 조건 불씨, 연료, 기상…기상은 통제할 수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기상입니다. 건조한 날씨에 부는 강풍이 (산불에) 가장 영향력이 큰 인자예요.”

산림청 산림항공본부의 김만주 산림항공과장(현 산림청 중앙산림재난상황실장)이 말했다. 그는 13년째 산림청에서 산불 대응을 하고 있다. 산불이 났을 때 현장의 어디로, 몇 대의 헬기를 보내 어떻게 불을 끌지, 그가 결정한다.

김 과장이 느끼기에 기상 조건들은 점점 ‘불의 크기를 키우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일단 강수량과 강수일수가 모두 감소하는 추세다. “예전엔 영동지역에 2m씩 눈이 쌓이는 건 흔히 있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눈 없이 지나가는 겨울이 있을 정도로 적설량이 줄고 있어요. 적설량, 강수량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

국내 건조일수 및 강수일수

※출처: 산림청

건조일강수일

국내 건조일수 및 강수일수

한국의 강수량은 연평균으로 따지면 적지 않은 수준이지만, 여름철에 편중돼 있다. 산불 위험이 높은 봄·가을 기온은 점점 높아지고, 건조해지고 있다.

5월부터 시작되는 ‘이른 고온 현상’은 최근 5년간 2018년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발생했다. 지난해 가을철(9~11월) 평균 기온은 15.4도까지 올라, 관측 이래 두 번째로 높았다.

인터뷰대사

- 김만주 산림항공과장(현 산림청 중앙산림재난상황실장)

눈과 비가 적게 내려 한껏 건조해진 땅에, 높은 기온이 더해지고 있다. 불이 나기 좋은, 그것도 ‘크게 나기’ 좋은 조건이다.

지난해 강원도 동해안에서 일어난 산불은 이러한 기상 조건일 때, 불이 얼마나 순식간에 커질 수 있는지 정확히 보여줬다. 산림항공본부 이상우 운항팀장은 1년여 전 헬기를 몰고 강원도 고성 산불 현장에 도착했을 때의 허무함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고성 산불은 새벽에 발생(확산)했죠. 일출과 동시에 이륙하라는 지시를 받고 기상이 안 좋은데도 불구하고 정말 어렵게 넘어갔어요. 그런데 막상 저희가 도착했을 땐 그야말로 ‘잔불’만 남아있는 상태였어요. 불이 이미 다 휩쓸고 지나가 (더 이상) 탈 만한 게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으니까요. 그때 느낀 게, 자연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구나였어요.”

지난해 4월4일 강원 동해안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속초시의 한 야산이 민둥산으로 변해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 팀장에 따르면 “대형 산불의 기준은 면적으로는 100㏊ 이상, 시간으로는 24시간 이상, 헬기 대수로는 10대 이상 투입되는 것”으로 정의된다. 비행 시간 2600시간, 산불 진화 경력 13년의 베테랑 조종사에게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력감이 들게 한 바로 그 산불의 규모는 어땠을까.

산림 2832㏊가 소실됐다. 3일간 지속됐으며, 헬기 105대가 투입됐다. 2명이 사망했고, 이재민 1524명, 재산피해 1291억원이 발생했다.

‘2019 강원 동해안 산불백서’는 이때 피해가 컸던 이유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4월4일 강풍경보, 건조경보가 발효 중인 가운데 4월5일 오전까지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었다. (…)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림은 평균 풍속 10~18m/s의 강풍에 불쏘시개 역할을 해 산불 확산을 가속시켰으며, 일몰 후 헬기 투입도 불가능하여 피해가 가중되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산불의 대형화, 장기화, 연중화

산불은 커진 것뿐 아니라 불규칙한 양상도 보이고 있다. 과거엔 산불에도 나름의 규칙성이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아래에서 시작해 위에서 끝났다. 남부지방에서 보통 그해의 첫 불이 나면, 이후 중부지방, 경기 북부로 이어지다 잦아들었다. 시기적으로는 2월쯤 시작돼 5월 중순이면 끝났다.

김 과장은 “(예전엔) 남부지역에서부터 ‘불이 올라온다’고 표현했다. 저희끼린 ‘강원도 고성까지 가면 산불이 끝난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도 “5월 중순에 아카시아꽃이 피면 산불이 끝난다고들 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대사

- 이상우(현 산림항공본부 운항팀장)

지금은 어떤 지역에서든, 언제든, 산불이 난다. 김 과장이 말했다. “지금은 강원도 고성에서 불이 먼저 났다가, 경상남도에서 났다가 해요. 어떤 경향성을 보인다기보다는 국지적으로 조건만 되면 발화합니다.” 불이 시작되는 시기는 빨라졌고, 끝나는 시기는 늦춰졌다. 1년 열두 달 중 긴장해서 산불 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기간이 8개월로 늘어났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해진 산불은 두 사람의 일하는 방식도 바꿨다. 김 과장은 이제 어느 지역에서 산불이 나도 그 지역에 헬기들을 미리 전진배치하지 않는다. “과거엔 (첫 산불 발생지가) 경상남도 양산이다, 하면 위쪽에 있던 헬기들을 밑으로 보내서 그쪽부터 진화를 했어요. 지금은 어느 지역에서 산불이 먼저 시작했다고 해서 그쪽에 헬기를 보내지는 않아요. 그냥 다 원래 포스트에 있어요. 또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니까요.”

7~8월에도 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되자, 이 팀장처럼 헬기를 직접 조종하는 이들은 ‘대기 시간’이 늘었다. “산불 기간으로 정해진 때는 항공기 가용 대수도 그에 맞춰 증가하거든요. 옛날엔 산불 위험 기간이 끝나면 거의 대기가 없어졌는데, 요즘엔 일몰 때까지 대기하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요. 원래는 5월 말이면 끝났죠.”

올해 대기는 7월 초에 끝났다.

최근 10년 산불 발생 현황

※출처: 산림청

국내에서는 올해도 큰 산불이 났다. 지난 4월24일 경북 안동 풍천면에서 난 산불은 하루 만에 진화될 뻔했지만, 강풍으로 불이 재점화돼 3일간 탄 뒤에야 꺼졌다. 강풍과 소나무림이 만나 발생한 이 산불은 축구장 2700개 규모(1944㏊)의 피해를 냈다. 김 과장이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내륙 산불이었다.

“그 불덩어리가 화산 폭발 수준의 상승기류를 만들어 냈어요. 예전(2009년) 칠곡 산불이 좀 크다고 했는데, 이것은 게임이 안 됐어요.” 3일차 진화작업에 투입됐던 이 팀장은 “산림청 생활을 13년 했는데, 그렇게 화세가 세고 진화 반경이 15㎞ 이상 되는 산불은 처음 봤다”고 했다.

2020년 1월 10일 대형 화재로 불타고 있는 호주 뉴사우우스웨일스 주 산맥의 모습. (Photo by Sam Mooy/Getty Images)

올해 국내 언론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던 호주 산불은 남한보다 넓은 면적을 태운 뒤 수그러들었다. 한국은 국토의 63.5%가 산지다.

한국에서도 산불이 호주와 같이 장기화, 대형화될까. 김 과장은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산림 내 축적된 임목량이나 낙엽층이 계속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래도 단위면적당 헬기나 인력이 잘 갖춰져 있는 편인데, 호주나 미국처럼 산불 발생 기간이 길어지면, 예컨대 한 1주일씩 간다, 한 달 간다고 하면…. 더 큰 대형 산불에 대비하는 체계를 갖춰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04

땅의 증인

사철 검푸르던 지리산의 회색 탈모

이상기후에 배꽃들은 말라죽었다

한때 농사는 단순하고 정직한 일이었다. 베테랑 농부든, 초보 농부든 계절의 변화에 맞춰 매달 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땅 고르기와 비료 주기 같은 그 티 나지 않는 일들을 얼마나 성실하게 했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졌다.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원리가 여전히 작동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눈이 한 차례도 내리지 않는 따뜻한 겨울과,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 하는 고온건조한 봄, 한 해에 태풍이 갑자기 7번이나 몰아치는 기후변화의 시대에 농사는 더 이상 단순한 일도, 땀 흘린 만큼 결과가 돌아오는 일도 아니다. 농사는 복잡하고, 또 운에 기대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26년차 배 농부 노봉주씨도 올해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농사는 크게 망쳤다.

나주에서 배 농사를 짓는 노봉주씨가 냉해로 인해 크기가 골프공보다 작고 모양이 찌그러진 기형 배들을 보여주고 있다.

전남 나주에 있는 그의 밭에는 골프공보다 작은 크기의 열매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질척이는 땅에 처박혀 있었다. 나무에 달려있는 열매의 크기도 바닥에 떨어진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떤 가지에는 검게 말라 비틀어진, 언뜻 보면 얇은 나뭇가지 같은 배꽃도 붙어 있었다.

노씨는 밭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배나무 가지에 달려있는 열매를 툭 땄다. “이런 배들은… 이렇게 (모양이) 비틀어진 것들은 돈이 안 돼요.” 그는 가지의 나뭇잎들을 들추며 말했다. “원래는 이런 꼭지 하나하나에 배(열매)가 5개, 6개씩 달려있어야 해요.” 그가 가리킨 곳에는 열매가 3, 4개씩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모양이 찌그러진 것들이 많았다.

노씨가 아직 새파란 열매 하나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다 자신의 엄지 손가락에 갖다댔다. “이때쯤이면 이것보다 열매 크기가 1.5배, 2배는 돼야 하는데…. 제 엄지손가락 정도는 돼야 해요.”

노씨의 배밭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터뷰대사

- 노봉주씨(26년차 배 농부)

전국적으로도 올해 4월은 추웠다. 4월 전국 평균기온은 10.9도로, 평년(12.2도)보다 낮았고, 강수량은 40.3㎜로 평년(51.1~89.8㎜)보다 적었다. 설상가상으로 기온이 떨어진 다음에는 강풍이 불었다.

2020년 봄(2월~4월) 기온 추이

※출처: 농촌진흥청

2020년기온평년기온

2020년 봄(2월~4월) 기온 추이

노씨가 밭에서 땀 흘리는 일을 멈추고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무렵, 강원도 철원에 사는 양봉업자 임송빈씨는 벌 110군을 이끌고 아카시아 꽃을 따라 전국을 돌고 있었다.

꽃밭에서 꿀벌이 굶어 죽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이동양봉을 한다. 이동양봉은 아카시아 꽃이 피는 지역을 따라 순차적으로 이동하며 꿀을 따는 것이다. 보통 5월8일쯤 꽃이 가장 먼저 피는 남부지방에서 1차 채밀을 시작한 후 5월 중순쯤 중부지방에서 2차, 5월 말 북부지방에서 3차 채밀을 한다. 한 지역에만 머물며 채밀을 해서는 소득을 얻기 어렵기 때문에 많은 양봉농가들이 이런 식으로 이동하면서 양봉을 한다.

이런 작업 형태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꽃이 정해진 개화시기에 맞춰 남부지방에서부터 북부지방으로 올라오면서 필 것, 비가 내리지 않을 것. 올해는 그 조건이 모두 갖춰지지 않았고, 임씨도 노씨처럼 한 해 농사를 크게 망쳤다.

인터뷰대사

- 임송빈(40년차 양봉업자)

아카시아 꽃은 국내 양봉농가의 주 밀원이다. “원래 아카시아는 기적 같은 나무예요. 큰 나무들은 한 나무에서도 꿀이 많게는 3말(54ℓ)이 나온다고 그래요.” 한국양봉농업협동조합의 ‘2020년 벌꿀 생산 흉작 원인 분석 및 작황과 지원방안’ 보고서에는 이 ‘기적 같은 나무’에 일어난 일이 구체적으로 담겨있다.

보고서는 올해 흉작의 원인으로 저온현상을 꼽았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이 아카시아 나무 꽃대 생성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이동양봉이 시작되는 5월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렸다. “아카시아 나무 꽃대 발육이 예년 대비 50% 수준”이라며 “최근 지구온난화 등 이상기후로 인해 벌꿀 생산을 예측하기 힘든 불규칙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최근 10년간 국내 벌꿀 총 생산량

※출처: 한국양봉농업협동조합

최근 10년간 국내 벌꿀 총 생산량

임씨는 양봉을 시작한 이래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5월 아카시아 철이 지나면 잡화꿀과 밤꿀의 채밀시기가 돌아온다.

그는 “딴 해는 아카시아가 (꿀이) 안 나와도 잡화, 찔레도 있고 때죽도 있었는데, 아카시아에서만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꽃에서 꿀이 분비가 안 되는 상태”라며 “양봉을 40년 했는데, 2004년 외국에서 벌레가 들어와 아카시아 나무가 병들었을 때 빼고 이건 처음 보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잡화꿀과 밤꿀을 합해서 겨우 반 드럼을 채웠다.

역대 최악의 흉작을 맞은 강원도 철원의 한 이동양봉 농가에서 꽃에 꿀이 없어 아사 직전의 벌들이 벌통 주위를 맴돌고 있다.

사실 노씨와 임씨의 농사는 배꽃과 아카시아 꽃이 ‘원래 피던 때’에만 피었어도, 망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립농업과학원 기후변화생태과의 심교문 연구관은 “겨울철이 따뜻하다보니 월동작물과 과수의 생육시기가 빨라졌는데, 그 뒤 4월쯤 온도가 떨어졌다”며 “평상시 같았으면 개화기가 아니어서 피해를 보지 않을 상황에서 피해를 보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10년간 국내에서는 과거에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기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심 연구관은 “폭염이 매년 발생하고 있는데, 최근에 그 강도가 강화되고 빈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반대로 2000년 초반에는 길고 강한 한파가 발생했다. 강수량도, 단기간에 지역적 집중호우가 빈번해지고 있지만, 2015~2017년에는 장기적인 가뭄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25년간 “오직 배만” 키웠다는 노씨는 이번 농사를 끝으로 사실상 배를 포기했다.

“이런 자연 재해가 왔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요.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조건이 온다 그러면 저는 그냥 농사를 안하고 포기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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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비정상이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후 현상은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난 곳은 시베리아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라는 러시아 베르호얀스크의 기온은 지난 6월 ‘38도’를 기록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올해 1~6월 시베리아의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5도 이상 높았고, 이 중 6월은 10도 이상 높았다. 기후학자들은 “인간이 자행한 기후변화의 영향이 없었더라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이미 과거(1912년~1920년)보다 최근(2011년~2019년) 1.8도 상승했고, 강수량도 86.1mm 늘었다. 온실가스가 계속 지금처럼 배출된다면 폭염일수는 앞으로도 늘고, 한파일수는 감소하며, 이번 장마와 같은 ‘센 강도로 많이 내리는’ 호우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연평균 기온 편차 추이(단위: ℃)

막대그래프에 마우스를 올리면 연도별 상세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73

연평균 기온 12

평년 대비 편차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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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상청 기상연보연평균 편차는 1973년부터 2019년까지 50년간 평균 기온 12.53도 대비 해당 연도의 평균 기온 편차를 의미한다. 2019년도의 전국 평균기온은 13.5℃로 최근 10년(2010~2019년) 평균보다 0.5℃ 높았고, 평년(1981~2010년)보다 1.0℃ 높았다. 이는 1973년 이래(45년간) 최고 2위에 해당하는 값이다.

기후변화로 고사하는 지리산 구상나무의 증인인 민병태씨는 인터뷰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 인류도 (지구의) 전체 틀에 한 구성원이잖아요. (자연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잖아요. 서로 이용하는 관계잖아요. 그래서 저는…, 전 인류의 회의가 필요한 것 같아요.”

기후변화가 가속화될수록, 더 많은 ‘기후변화의 증인들’이 등장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 ‘증언’은 ‘나의 일’이 될 것이고, ‘증언’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